[김재호의 과학 에세이]날개 잃은 초파리는 왜 얼어붙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8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웽 웽 웽. 성가신 파리 한 마리가 방 안에 들어왔다. 파리는 얼마나 재빠른지 잡으려 하면 할수록 약이 오른다. 심지어 파리는 내가 다 마신 컵 안에서 유유자적 돌아다녔다. 이때다 싶어서 종이로 컵 뚜껑을 덮어버렸다.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하루 정도 그대로 두면 파리는 어떻게 될까. 어둠 속 파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간신히 공기만 통과하는 컵에 갇혔다. 다음 날 살펴보니 파리는 배를 보인 채 죽어 있었다. 파리는 자포자기한 것일까.

절체절명의 순간, 과연 초파리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는 위협에 노출됐을 때 노랑초파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4∼6일 된 암수 노랑초파리들의 날개를 떼어내고, 300마리한테 점점 커지는 검은 원 자극을 20번씩 5분 간격으로 줬을 때, 6.4%(6000분의 384)만이 탈출하기 위해 뛰어올랐다. 여기서 연구진은 초파리의 반응 시 나타나는 이동 속도와 뇌 신경 활성화를 알아봤다.

19세기 말부터 등장한 실험생물학의 발달, 20세기 유전학의 혁신과 더불어 초파리는 실험연구의 주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초파리는 금방 번식하고 일찍 죽으며 쉽게 구할 수 있는 실험 대상이기 때문이다. 초파리의 ‘초’는 상한 과일 등 신맛을 좇는 습성에 따라 붙여졌다. 전 세계에 2000여 개의 초파리종이 있다.

초파리는 인간과 흡사한 면이 있다. 초파리는 번식 욕구가 엄청나며 학습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파리는 잡기 쉬운 대상이 아니며, 아무리 잡아도 파리는 끊이지 않는다. 특히 초파리의 유전자는 인간의 유전자와 60%가 일치한다. 질병에 국한되어 살펴보면 75%로 그 수치는 늘어난다. 심지어 초파리는 인간과 비슷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

또한 초파리는 발효된 과일을 좋아해 종종 취하곤 한다. 그런데 취하면 사람과 비슷하게 오버액션을 한다. 흥에 취해 안 해도 될 행동을 하다가 잡아먹히기도 한다. 이번 실험으로 초파리의 방어기제가 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이 추가로 밝혀졌다. 위협에 직면했을 때 곤충이나 인간이나 반응할 수 있는 건 도망, 대항, 정지, 세 가지뿐이다.

연구진은 초파리를 뚜껑 있는 접시로 덮고 팽창하는 검은 원을 노출시켰다. 점점 커지는 검은 원은 초파리한테 위협으로 감지된다. 위험에 빠진 초파리는 당연히 도망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 초파리는 얼어붙었다.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죽은 척한 것일까. 포유류들과 마찬가지로 초파리는 몇 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또는 반 정도 웅크리거나 다리 한 개 혹은 두 개를 허공에 매달아 이상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대다수 초파리가 얼어붙었지만 몇몇은 위협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컴퓨터로 초파리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 결과, 초파리의 반응은 위협이 나타났을 때 얼마나 빨리 걷고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즉 초파리의 걷는 속도가 느리면, 초파리는 움직이지 않고 포기했다. 초파리가 어떻게든 위협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차원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면 결국 도망쳤다. 초파리의 걷는 속도에 따라 도망이냐 정지냐가 결정됐다. 이로써 곤충의 행동 상태가 어떻게 방어전략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뉴런의 반응이 파리를 도망치거나 움직이지 않고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DNp09라는 뉴런이 초파리를 얼어붙도록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파리의 수십만 개 뉴런 중 두뇌 양쪽 각각에 하나씩 있는 한 쌍의 뉴런이 방어 행동을 제어한 것이다. 연구진이 뉴런을 꺼버렸을 때, 초파리는 정지하지 않고 위협으로부터 도망쳤다. 더욱 놀라운 건 위협이 부재한 가운데, 뉴런들을 다시 켜면 걷는 속도에 비례해 파리는 얼어붙었다. 선택회로의 관문에 뉴런이 있었던 셈이다. 이 뉴런들은 운동 명령을 파리의 뇌에서 척수로 보낸다. 선택뿐 아니라 행동에도 관여하는 것이다.

초파리를 포함해 동물들의 위협 반응 원리가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른다. 설치류 같은 경우 탈출구가 없을 경우에만 움직임을 정지한다. 그 외엔 어떻게든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들이 움직이지 않고 얼어붙은 경우가 때론 가짜일 수 있다. 죽은 척해서 포식자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인간은 위기의 순간 거짓말을 하거나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그때 과연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런 행동이 나타나기 직전 어떤 시그널을 보내는지 이번 연구 결과와 대비시켜 보면 흥미롭겠다. 아무튼 희망 준비가 결국 목숨을 살린다. 초파리나 인간 모두 말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파리#초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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