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그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빙판에 입을 맞춘 뒤 시상대에서 러시아 국가를 따라 불렀다. 관중은 한목소리로 “빅토르 안∼, 빅토르 안∼”을 연호했다.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33)은 한국 팬들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르며 ‘쇼트트랙 황제’가 됐다. 하지만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국적을 버린 뒤 러시아로 귀화했다. 당시 그는 무릎 부상을 당한 뒤 대표 선발전에서 거푸 탈락했다. 소속팀 성남시청마저 해체되자 갈 곳을 잃었다. 때마침 소치 올림픽 개최국 러시아가 손을 내밀었고, 그는 고심 끝에 러시아행을 택했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고,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었다. 그는 소치에서 3관왕에 오르며 ‘러시아의 영웅’이 됐다.
뜻밖의 유탄을 맞은 건 한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이었다. 빅토르 안이 파벌 싸움의 희생양으로 귀화했다는 오해가 퍼지면서 그 화살은 애꿎은 한국 선수들에게 향했다. 정정당당히 대표 선발전을 통해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본인 입으로 수차례 “파벌 싸움 때문에 귀화한 게 아니라 운동할 곳이 필요했다”고 말했지만 여론은 바뀌지 않았다. 한국 남자 선수들은 극심한 부담 속에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그런데 최근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조만간 시작되는 국내 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 빅토르 안이 주연으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외국 국적을 가졌다고 한국 방송에 출연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논란이 되는 것은 그 프로그램이 군대 체험을 다루는 MBC ‘진짜사나이300’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건군 70주년을 맞아 육군본부가 최초로 선발하는 ‘300워리어’에 도전해 대한민국 무적의 전사가 되는 대장정”이라고 해당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빅토르 안은 과연 여기에 적합한 캐스팅일까. 그는 여전히 러시아 국적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외국인들도 종종 출연한다. 그렇지만 한국 국적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빅토르 안과는 경우가 다르다. 그는 2006년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아 군 복무도 하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도핑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2018 평창 올림픽에 출전할 계획이었던 그는 러시아의 국가 주도 도핑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 속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 결정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IOC는 여전히 제재를 이어가고 있고, 그는 최근 은퇴를 발표했다.
한국 선수들의 소외감은 또 어쩔 것인가. 4년간 절치부심한 한국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임효준, 황대헌, 서이라)은 평창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합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인공은 한국 선수들이 아닌 빅토르 안이다.
공영방송이라는 MBC는 무슨 생각으로 그를 섭외했을까. 그는 왜 또 이를 받아들였을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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