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필’의 사용에 어려움을 느껴 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관련 사항을 맞춤법에서 다룰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 아래 문장을 보자.
오늘같이 더운 날 해필 대청소라니. 왜 해필 접니까?
역시 맞춤법상 오류가 없다. 구성 한자가 그 이유를 말해 준다.
하필: 어찌 하(何), 반드시 필(必) 해필: 어찌 해(奚), 반드시 필(必)
‘어찌 하(何)’ 대신에 ‘어찌 해(奚)’를 사용한 ‘해필’이라는 단어도 있는 것이다. 대개 ‘하필’도 맞고, ‘해필’도 맞다고 외운다. 누군가 ‘해필’이 틀렸다고 말할 때 ‘해필’도 맞는 말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멈춰 보자. 누군가 ‘해필’이 틀렸다고 말하는 지점. 그들은 왜 ‘해필’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래의 관계들 때문이다.
여기서 음운 현상 하나를 배우자. 누구든 편하게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말 안에 든 것들을 비슷한 모양으로 바꾸면 소리 내기 편하다. 위의 단어들에는 모두 ‘ㅣ’가 들었다. 뒤에 ‘ㅣ’ 모음이 있다는 것 때문에 앞 모음을 그와 비슷하게 소리 내려 할 수 있다. 이 현상 때문에 ‘구경’을 ‘귀경’으로, ‘고기’를 ‘괴기’로 발음하는 일이 생긴다. 방언에서 이런 말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언어학적으로 아주 흔한 일이다. ‘구경’에 ‘ㅣ’가 들었다는 말이 어색하다면 ‘ㅕ’는 ‘ㅣㅓ’를 한 번에 말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된다.
표준어는 서울말(중앙방언)을 대상으로 한다. 서울말에는 앞서 다룬 현상이 상대적으로 적게 일어난다. 그래서 이 현상을 표준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귀경, 괴기, 지팽이, 아지랭이’ 등이 잘못된 표기인 이유다.
이 현상을 ‘하필’과 ‘해필’에 적용해 보자.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생긴다.
① 하필(何必) ② 해필: 하필→해필(뒤의 ‘ㅣ’ 때문에 ‘ㅏ’가 ‘ㅐ’가 됨) ③ 해필(奚必)
①과 ③은 맞춤법상 맞는 표기이지만 ②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②의 방식으로 ‘해필’을 쓴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③의 용법으로 ‘해필’을 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하필’도 맞고, ‘해필’도 맞다고 외우는 방식에는 ①이 어떤 음운현상으로 ②가 된 것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한다.
‘하필’과 ‘해필’을 동일한 무게로 생각하기에 생기는 문제다. 하지만 ‘하필’과 ‘해필’은 무게가 다르다. 여기서 무게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양과 관련된다. 우리는 주로 ‘하필’을 쓴다. 그리고 때때로 ‘필’의 ‘ㅣ’의 영향으로 ‘해필’이라 말하려 하기도 한다. 이런 적용이 맞춤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분명히 알아야 앞서 본 ‘구경, 지팡이’와 같은 단어들에서 일어나는 음운현상이 확대 적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