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홍보하는 ‘저출생 극복’ 동영상, 높은 조회수 기록했지만 내용은 처참
육아출산 고민에 아빠·남편 안 보이고 전문가 조언없이 ‘주변인 간섭’만 등장
허술할뿐더러 시대에도 뒤떨어진 홍보는
국민에게 ‘아이 낳지 말라’ 역설하는 꼴
대한민국 정부 트위터 공식 계정에 게시된 ‘저출생 극복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젊은이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다둥이 부모 50쌍이 다른 부부들에게 둘째 임신 관련 상담을 해 주는 ‘카운슬링’이라는 저출생 대책 정책을 소개하는 한편, 국민들에게 출산에 관한 고민을 보내면 2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준다고 홍보하는 영상이다. 지금까지 시청자가 누적 약 30만 명에 달한다.
30만 명이나 저출생 극복 프로젝트라는 심심한 제목의 영상을 보다니, 숫자만 놓고 보면 이만한 성공이 없다. 그러나 이 동영상이 이렇게 인기를 얻은 이유는 재미나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저출생 극복 프로젝트’ 영상 자체가, 어떤 누리꾼의 말을 빌리자면 ‘비출산 권장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시작은 이렇다. 한 여성이 신호가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를 달린다. 여성이 간 곳은 어린이집이다.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던 아이가 고개를 들고 반가워한다. 엄마와 딸은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 옆으로 다른 여자아이가 자기 엄마와 함께 유모차를 밀며 지나간다. 딸이 엄마를 보며 “동생 갖고 싶다”고 한다. 엄마는 고민에 빠진다. 이런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진 엄마를 위해 이미 아이를 여럿 출산한 부부가 조언을 해 준다는 문구가 나온다. 엄마가 집 소파에 앉아 다른 부부의 조언을 듣는다.
이 45초짜리 영상은 우리 세대가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 10년간 100조 원이나 투입했다는 저출생 대책이 전혀 효과가 없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첫째, 아빠가 없다. 둘째 아이 임신을 고민하는데 아빠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남자 배우를 못 구했나 싶을 때 남성 조언자가 비로소 한 명 나온다. ‘카운슬링’ 상담마저도 엄마 혼자 받는다. 여성이 혼자 임신할 수는 없는데(일단 정자가 필요하긴 하다), 우리 정부는 임신과 출산이 쌍방이 아니라 여성의 고민거리라고 본다는 메시지를 이보다 더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영상은 우리 현실보다도 뒤떨어져 있다. 대부분의 상식적인 부부는 함께 고민하고 서로 상의하여 둘째 아이 임신을 결정한다.
둘째, 엄마만 육아를 한다. 딸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종종 뛰어가는 사람도 엄마다. 동생 갖고 싶다는 어린아이의 푸념을 듣고 기분을 맞추어 주는 사람도 엄마다. 유모차를 밀며 지나가는 사람도 엄마다. 다정한 커플이 어두운 밤에 어린이집에 가서 보육교사의 일대일 보살핌을 받으며 안전하게 잘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며 ‘피곤하지만 이만하면 하나 더 낳아도 좋겠다’고 생각을 해도 괜찮아 보일까 말까다. 영상에는 국가적으로 충분한 공공보육지원을 계획하거나 사회적으로 평등한 육아를 권장하겠다는 시늉조차 없다.
셋째, 전문가가 없다. 아이를 여럿 가진 다른 부부는 저출생 문제의 전문가가 아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세히 읽어보았더니 둘 이상의 아이를 둔 부부 50쌍을 선발해,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고 홍보 미션을 수행하면 육아지원금 200만 원을 각각 지원한다고 한다. 한번 인터넷에 영상이 게시되면 영원히 떠돌리라 각오해야 하는 시대에 자신의 얼굴과 가족 구성을 공개한 영상을 촬영해 200만 원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이 다둥이 부모가 처하는 상황이라는 홍보일까. 또래 친구, 양가 부모님, 교회 권사님, 지하철 승객 A, 국민연금이 걱정되는 B 아저씨, 요즘 젊은 것들의 이기심이 불편한 C 어르신까지, 가임기 젊은이들은 이미 나라 걱정 비전문가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200만 원 받은 50쌍을 그에 보탠들, 아이는 단 한 명도 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 마련에 10년간 100조 원을 투입했다고 한다. 이런 수준의 정책이 모여 100조 원이라면, 그렇게 많은 돈을 썼는데도 합계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한국의 현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국가가 비출산 권장의 최전선에서 이토록 애쓰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아이를 가지겠는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