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횟집이나 어시장에 가면 물고기에 대해 아는 척하는 고질병이 있다. 어느 날, 지인들과 서울 신촌의 한 횟집에 갔다. “수족관에 있는 개숭어가 참 싱싱하네요”라며 한껏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참숭언데요”라는 주인장의 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일행은 한바탕 웃으며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나를 놀렸다. 횟집 주인이 참숭어라는데 누가 내 말을 믿어 주겠는가. 억울한 마음에 횟집 갈 때마다 수족관의 숭어 이름을 확인한 결과, 섬소년으로 자라며 입력된 내 기억을 수정하게 됐다. 내가 알던 숭어는 개숭어가 아닌 참숭어임을 인정했다.
이후 동해안과 남해안의 어촌을 두루 다닐 기회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어판장 상인들에게 물었다. 서울 횟집 주인들이 참숭어라고 말한 것이 개숭어라는 일관된 답변을 들었다. “그럼 그렇지 서울 사람들이 뭘 알겠어”라고 생각하며 다시 내 정보를 되돌려 놓았다. 둘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게 됐다. 주로 그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숭어를 ‘참숭어’라 하고, 이외의 종류를 ‘개숭어’라 한다는 것을. 내가 개숭어라 주장했던 눈동자에 노란색 테두리가 짙은 숭어는 서해안에서 많이 잡힌다. 검은색 눈동자의 숭어는 우리나라 전 해역과 온대와 열대 해역에 두루 서식한다.
이런 경우는 다른 해산물도 마찬가지다. 인천과 서해5도 등에서는 ‘피뿔고둥’을 ‘참소라’라고 하고, 지역에 따라 ‘뿔소라’를 ‘참소라’라 부르기도 한다. 어디선가 ‘참’은 다른 곳에서는 ‘개’가 되고, 여기서 ‘개’는 저기서 ‘참’이 되기도 한다. 반면 참돔, 참조기, 참홍어, 참가자미, 참복, 참서대, 참다랑어, 참우럭, 참꼬막 등은 어디에서나 ‘참’이고 개서대, 개볼락, 개우럭, 개복치 등은 어디에서나 ‘개’이다. 흔히 ‘참’은 참된 것이기에 좋은 것이고, ‘개’는 그와 반대 의미로 간주한다. 그러나 해산물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변에 많이 나는 것이 참일지니, 참은 참만의 본성이 따로 있지 않다. 바닷가에서 참이 붙은 해산물을 사 먹는 일은 나쁘지 않다. 최소한 그 지역에서는 ‘참’이기에.
반면 이름으로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강화도는 밴댕이로 유명한 곳이다. 사실 강화도에서 밴댕이라 부르는 어종은 ‘반지’이고 멸칫과에 속한다. 학명에 따른 실제 밴댕이는 남해안에서 멸치를 어획할 때 함께 잡히는 일명 ‘디포리’다. 청어과에 속한다. 일반 소비자는 생김새가 비슷하고 강화도에서 반지를 밴댕이라 부름에 따라, 두 어종을 구분하지 못한다. 두 밴댕이, 즉 강화도에서 밴댕이라 불리는 반지는 횟감이나 구이용으로, 실제 밴댕이인 디포리는 주로 국물용으로 이용된다.
연평도, 백령도, 대청도 등지에서는 노랑가오리를 간재미 혹은 팔랭이라 부르고, 전남 해안 등지에서는 홍어를 간재미라 부른다. 목포 주민이 백령도 관광을 가서 간재미를 시키면 당연히 노랑가오리가 나올 것이다. 가오리를 홍어로 속인다며 화를 내면 안 될 일이다. 필자는 식당에서 간재미무침, 간재미회, 간재미탕이라는 차림표를 보면 주인장의 말씨를 듣고 대략 홍어인지 노랑가오리인지를 어림잡아 헤아린다. 해산물에서 ‘참’과 ‘개’의 세계는 쉽고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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