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제비가 서로 엇갈림이 보기에 이리도 서러운가
귀뚜리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 긴 밤을 새네.
가을은 애달픈 목숨이 나누어질까 울 시절인가 보다.
가없는 생각 짬 모를 꿈이 그만 하나둘 잦아지려는가
홀아비같이 헤매는 바람떼가 한 배 가득 굽이치네.
가을은 구슬픈 마음이 앓다 못해 날뛸 시절인가 보다.
하늘을 보아라 야윈 구름이 떠돌아다니네.
땅 위를 보아라 젊은 조선이 떠돌아다니네.
‘지금 하는 일을 멈추고 하늘을 보세요.’ 이런 메시지를 받고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삼 아름답다. 그 덥던 여름의 일은 어느새 저도 잊고 나도 잊었다. 가을은 이토록 위대한 계절. 더 받은 것도 없는데, 근거 없이 마음은 여유로워진다. 이런 때에는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우리의 가을 하늘이 아름다워 고마운 하늘이라면, 이상화의 가을 하늘은 소중해서 아픈 하늘이었다. 이상화 시인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의 침실로’를 외치는 마돈나의 시인을 떠올린다. 한편으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떠올리기도 한다. 맞다. 그는 언제고 오지 않는 ‘마돈나’를 부르며 ‘빼앗긴 들’ 위에 서 있었다. 소중한 것을 사랑했고, 지키려고 애썼다. 이상화의 시편들을 읽다 보면, 그가 이 땅과 하늘과 초목과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된다. 민족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논리를 세우고 시를 썼던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시는 속에서 터져 나오듯이 운명처럼, 물길처럼, 바람처럼 쏟아져 나오는 식이었다.
이 시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비슷하게, 1926년에 발표되었다. 그때도 이 땅의 가을은 오늘처럼 아름다웠을 터. 그런 가을을 빼앗겨 시인은 울고 있다. 우리 하늘은 그토록 사랑받았던 하늘이다. 그만치 소중했던 하늘이다. 이 시인의 마음을 빌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 더욱 유정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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