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 500곳 중 342곳 “5년 뒤 규제 더 강해진다”고 전망하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일 00시 00분


동아일보가 대·중소기업 500개를 설문조사한 결과 342개(68%) 기업이 “5년 뒤 규제가 현재보다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정부의 혁신 의지와 국회의 입법 노력 부족’으로 지금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을 학점으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서는 50%가 C학점, 24%가 이보다 낮은 D학점을 줬다. 기업 4개 중 3개가 C학점 이하를 준 셈이다.

산업 현장을 들여다보면 한국이 왜 ‘규제 공화국’인지 더 확실해진다. 2016년 인공지능(AI) 기반의 금융투자 상품을 개발한 한 스타트업은 소비자 호응에도 불구하고 해당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현행법 저촉 가능성이 있다는 금융감독원의 제지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금감원은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호주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까지 했다니, 도대체 어느 나라 금융 당국인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내세우며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銀産)분리 완화를 ‘규제혁신 대상 1호’로 꼽았지만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는 데에만 한 달 반이 걸렸다. 아직도 국회에서 발목 잡힌 규제개혁 법안이 부지기수인데, 국회는 도리어 하루 1개꼴로 기업 관련 규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평소 정쟁(政爭)에 빠져 제 할 일을 방기하는 의원들이 규제 생산에는 왜 이리 부지런한가.

정부가 규제개혁이 신산업 확대, 일자리 창출의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역대 정부가 ‘규제 전봇대’나 ‘손톱 밑 가시’라는 말로 규제를 규정한 것도 그런 이유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붉은 깃발’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규제개혁에 관한 한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제론 옴짝달싹 못하는 ‘NATO(No Action Talk Only) 정부’라는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규제를 철밥통처럼 틀어쥔 공무원, 툭하면 특혜 시비를 거는 시민단체, 제 이익만 앞세운 기득권 이익단체까지 개혁을 가로막는 탓이다.

기업인들은 규제 완화가 필요한 분야로 일자리와 소상공인·중소기업, 신사업 분야 등을 꼽았다. 고용 유연성 제고 등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신사업 분야까지 규제 장벽에 막힌 것은 심각하다. 다양한 아이디어, 빠른 사업화가 관건인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우리만 낙오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날이 새로 쏟아지는 사업 아이템을 기존 법규에 꿰맞추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결국 불법 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규제개혁에 관한 기업인들의 불신이 크다.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규제 혁파 노력이 없다면 한국에선 ‘기업가 정신’이 빛을 보기 어렵다.
#규제개혁#은산분리 완화#규제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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