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프랑스 퓌뒤푸 역사파크… 한국의 ‘미스터 션샤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일 03시 00분


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지난달 추석 연휴 때 프랑스 중서부에 위치한 프랑스 역사테마파크 ‘퓌뒤푸(Puy du Fou)’를 다녀왔다.

프랑스에서 파리 디즈니랜드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테마파크인 ‘퓌뒤푸’는 약 15개의 공연장으로 꾸며져 있다. 20m 길이의 바이킹 배가 산 위에서 내려오고, 훈련받은 사자와 호랑이가 로마 검투사와 싸우고, 독수리 매 등 200마리의 새가 정수리를 스치며 날아다니는, 입이 딱 벌어지는 공연이 이어진다.

이틀은 꼬박 돌아다녀야 볼 수 있는 이 공연들을 다 보고 나면 자연스레 프랑스 역사를 꿰게 된다. 로마 시대부터 시작해 아서왕을 다룬 원탁의 기사, 백년전쟁 잔 다르크의 승리, 미국 독립전쟁 지원, 독일을 물리친 제1차 세계대전 베르됭 전투 등이 공연의 소재들이다. 이 모든 내용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영어 통역으로도 들을 수 있다.

한국의 ‘퓌뒤푸’를 상상해 봤다. 한국의 역사파크가 ‘퓌뒤푸’처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다면…. 그래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스토리, 신라 화랑의 기백,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과 의병, 일제강점기 독립군 이야기를 다룬 공연을 외국인들이 제 발로 찾아와 볼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뿌듯하지만 ‘한국의 퓌뒤푸’가 하루아침에 탄생하긴 어려울 것 같다.

요즘 프랑스 파리 16구에 사는 한 프랑스인 남성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생각뿐이다. 넷플릭스에서 처음 접한 뒤 한국인 부인보다 더 열심히 찾아본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영상미에 감탄하며 한국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있나 궁금해하며 봤다고 했다. 양반과 노비의 신분 차이가 20세기 초 구한말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에 신기해했고 일제의 만행을 접하면서 숙연해졌다. 그는 “우리도 독일 나치에 점령당해 고초를 겪었지만 일본이 더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의병은 정말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남편에게 한국 역사를 설명해도 그런가 보다 하더니 드라마 한 편으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한국인 부인이 놀라면서 한 말이다.

프랑스인들은 한국 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기자가 만난 많은 프랑스인 중 대부분이 한국 역사에 대해 아는 거라곤 자국이 참전했던 한국전쟁 정도였다. 동양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에서만 찾고 한국의 반만년 역사는 관심 영역 안에 없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된 뒤 영국에 거점을 두고 독립운동을 했던 레지스탕스를 늘 자랑스러워하는 프랑스인들은 같은 시기 활동했던 한국 의병과 독립군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면 애국심과 기백에 찬사를 보낸다. 모른다는 게 문제다.

퓌뒤푸를 찾은 기자도, 미스터 션샤인을 본 프랑스인도 프랑스와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려고 파크를 방문하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게 아니다. 재밌는 콘텐츠를 찾다가 자연스레 프랑스와 한국의 역사를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게 문화의 힘 아닐까.

미스터 션샤인에는 의병의 소식을 전하는 영국 데일리메일 기자가 등장한다. 약소국인 한국의 소식을 해외에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시엔 그것뿐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한국은 세계인을 매료시킬 강력한 문화의 힘을 갖고 있다. 한국의 케이팝 영화 드라마 등을 전 세계 어디서든 동시에 보고 들을 수 있다.

자랑스러운 한국 역사를 세계 방방곡곡에 알리는 것. 불꽃처럼 뜨겁게 피고 진 의병, 독립군 등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선조들에게 진 큰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이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퓌뒤푸#역사테마파크#미스터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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