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 usque tandem abutere, Catilina, patientia nostra?(카틸리나여, 그대는 얼마나 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 텐가?)
기원전 63년 11월 7일 로마 정치가이자 시인인 키케로가 원로원에서 동료 정치인 카틸리나를 탄핵하며 남긴 연설문은 서구 고전문학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Quo usque tandem’을 자기 연설에 곧잘 인용했다. 그만큼 ‘카틸리나 음모 사건’이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와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안보를 위해 시민의 기본권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다.
키케로는 카틸리나가 집정관인 자신을 암살하고 로마공화정을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면서 ‘비상대권’ 발령을 요청했다. 원로원 승인을 받은 키케로는 반란 가담자로 지목된 인사들을 재판도 없이 처형했다. 카틸리나도 토벌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카틸리나의 패배 직후 키케로는 국가를 구했다는 의미에서 ‘파테르 파트리아이(국부)’라는 존칭을 받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로마시민은 누구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반발에 부닥쳐 기원전 58년 키케로는 로마에서 추방됐다.
어찌 보면 국가안보를 지키려는 불가피한 기본권 침해로 보이지만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로마사 대가인 메리 비어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저서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서 역(逆)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지지 기반이 약했던 키케로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집정관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카틸리나의 음모를 국가안보 위기로 실제보다 과장했다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제기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부정사용 의혹 논란에서도 국가안보 위협 주장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심 의원이 내려받은 자료들 가운데 대통령 경호처의 통신장비 구입 명세가 포함돼 있다며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반국가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의원과 보좌진을 검찰에 고발한 기획재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식자재 업체정보를 예로 들면서 “국가 안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온갖 국가 중대사를 총괄하는 청와대 특성상 관련 정보가 적에 들어가면 국가안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여권 주장도 일리는 있다. 또 청와대 반박에서 일부 드러났듯 영수증에 찍힌 ‘이자카야’ ‘펍’ 등이 일반음식점인데 주점으로 오인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신장비나 식자재 구입 명세가 제3자에게 유출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현재까지 공개된 업무추진비 자료만으로 검찰이 야당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여당 일각에서 “구속 수사”를 운운하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청와대 업무추진비 자료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일정 부분 공개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키케로가 추방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왔을 때 그의 자택은 이미 헐렸고 그 자리에 리베르타스(Libertas) 여신을 위한 신전이 들어서 있었다. 리베르타스는 자유, 곧 시민의 권리를 상징한다. 고용쇼크와 비핵화 등 산적한 국정현안을 논의해야 할 정치권이 소모적 논란에서 벗어나 국가안보와 시민의 권리 사이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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