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8일, 파리의 귀스타브 플로베르 중학교에서 “한글은 누가 만들었어요?”라고 프랑스말로 묻자, “세종대왕!”이라고 17명의 프랑스 중2 학생들이 한국말로 대답했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개막식 날, 한국 국무총리와 프랑스 교육부 장관 등 양국의 외교·교육계 인사들 앞에서, 그렇게 한국어 수업 시연을 시작했다. 프랑스 최초로 한국어 수업이 제2외국어로 개설된 지 2주 만의 일이다.
시연이 끝나자, 당시 프랑스 교육부 장관이었던 발로벨카셈은 한국어를 바칼로레아(대입수능시험)에서 제2외국어 과목으로 지정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드디어 한국어가 대입 필수과목으로 격상된 것이다. 2011년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첫 한국어 수업이 열렸을 때, 교포 학생들은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격상시켜 달라고 프랑스 교육부 장관에게 편지를 썼다. 그때 “너희들은 한국어교육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것이다”라고 했던 나의 말이 생각나서 뭉클했다.
프랑스에서는 제2외국어를 중1부터 고3까지 배운다. 전 계열 필수과목이고, 바칼로레아에서도 제1외국어인 영어와 배점이 같다. 학생들은 학교에 개설된 2∼4개의 외국어 중에서 선택하는데, 스페인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을 제일 많이 배운다.
그런데 한국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제2외국어는커녕 제3외국어 수업조차 개설된 학교가 없었다. 바칼로레아도 제3외국어로만 볼 수 있었고, 응시자도 10여 명의 교포 학생뿐이었다. 제3외국어는 자유선택 과목으로, 관심 있는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면서 내신과 바칼로레아에서 보너스 점수도 딸 수 있기 때문에 학교마다 많은 외국어 수업이 개설되어 있는데, 한국어 과목은 없었다.
2008년부터 한국어 보급 사업이 적극적으로 펼쳐지면서 드디어 2011년 9월, 파리의 명문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에서 제3외국어 한국어 수업이 처음으로 열렸다. 파리의 고등학생들이 모여 듣는 연합수업인데, 파리 교육청은 “5명 이상이 모이면 개설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첫 한국어 교사로 파견된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수업설명회장에 들어섰는데, 깜짝 놀랐다. 70명 이상이 모였고, 그중 프랑스 학생들이 30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교육부는 ‘한류’의 일시적인 영향이라 거품이 곧 꺼질 거라면서, 수업 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예산 문제도 있지만, 프랑스 중고교에서는 외국어 과목 개설과 확장이 아주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수업은 계속 늘어, 현재 파리의 4곳을 포함해 보르도 등 8개 중고교에 개설되어 있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그 과정과 전략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어쨌든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교육의 파급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확실하며, 한번 개설되면 없어지기도 어렵다. 그래서 일본과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고교에 자국어를 정착시켰던 것이다. 바칼로레아 한국어 시험 문제의 수준, 전문교사 양성, 교육과정과 교재 개발 등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고, 정부 차원의 지원과 외교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조만간 프랑스를 방문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교육개혁의 핵심이 외국어 교육과 국제경쟁력 강화이니만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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