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세진]‘신비 상인’ 양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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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양아들’로도 불렸던 북한 신의주 경제특구의 초대 행정장관 양빈(55). 그가 16년 만에 대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양빈은 1일 타이베이에서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의 측근인 류타이잉 전 중화개발금융공사 이사장이 주최한 자리에 천민쉰 전 타이베이 101타워 회장 등 현지 재계 인사와 한국 롯데그룹 관계자까지 만나 대북 경협사업을 논의했다고 한다.

▷중국 언론에서 ‘신비 상인(神秘 商人)’으로 불릴 정도로 그의 성장 및 사업 과정은 모호하다. 1989년에 톈안먼 사태가 발생하자 네덜란드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국적을 얻은 그는 온실기술을 활용해 중국에서 화훼단지를 경영했다. 만성적인 기근에 시달리던 북한에 이 온실기술을 도입하려던 김정일이 양빈을 2002년 9월 신의주 경제특구 초대 장관에 파격적으로 임명한 것이다. 하지만 임명 일주일 만에 탈세 등의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돼 18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2016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과거 대북사업에 관여한 양빈 같은 인물이 다시 나타난 것은 그만큼 북한 투자에 대한 기업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특히 대만은 타이베이에 북한 무역대표부가 있을 정도로 북한 경제의 숨은 조력자다. 유엔 회원국이 아닌 대만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도 북한과 비공식 거래를 유지해 왔다. 중국에서 각종 탈세는 물론이고 스파이 혐의까지 받은 양빈이 대북사업으로 재기하기 위해 대만에 손을 내밀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입장에서 아버지의 양아들로 불리다 14년을 감옥에서 보낸 양빈의 투자 제안에 야박하게 굴 수는 없을 터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사업은 양빈이 경영한 과거의 온실사업 같은 차원을 뛰어넘는다.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달 초 평양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관련 국제회의를 열고 박람회까지 개최했다고 선전했다. 경제·기술 분야에 대한 북한의 관심은 우리 예상보다 앞서 있다. 북한이 신기술로 ‘4차 산업혁명’의 북한식 표현인 ‘새 세기 산업혁명’에 성공하려면 과거 신의주 경제특구가 왜 실패했는지부터 차분하게 복기해봐야 한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
#양빈#북한 투자#신의주 경제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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