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중 첫 1년 안에 ‘평생 현역사회’를 만들겠다. 남은 2년 동안엔 의료 연금 등 사회보장 전반에 걸친 개혁을 하겠다.”
지난달 14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토론회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당선 뒤 자신에게 주어지는 3년간 할 일을 이렇게 강조했다. “평생 현역인 사람은 연금을 받는 연령을 70세 넘어서도 선택할 수 있게 하겠다”고도 했다.
‘평생 현역사회’란 말은 언뜻 아름답게 들리지만, 일본인들의 반응에서는 체념과 냉소가 묻어나온다. 20여 년 전, 일본 정부가 연금 지급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릴 때 제시한 ‘65세 현역사회’의 데자뷔를 느끼기 때문이다. 즉, 평생 현역사회란 연금을 주기가 어려우니 ‘전 국민이 죽을 때까지 일하는 사회’를 뜻한다는 것.
요즘 일본에서는 “모두가 70세까지 일하는 인류 사상 첫 사회가 열린다”거나 “‘노후’라는 개념은 사라질 것”이란 디스토피아적 예측이 떠돈다. 사실 젊은이는 줄고 노인만 늘어나는 인구구조에서 고령자가 ‘부양받는’ 역할에서 세금과 보험료를 내는 현역세대 역할을 해주면 정부로서는 일거양득이다. 일본의 15∼64세의 생산연령 인구는 2018년 7500만 명에서 2040년 약 60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으로서는 ‘일할 수 있다’고 해도 고용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이 함정이다. 임금피크제로 한 사람이 회사에서 받는 평생 수입 총액은 60세에 퇴직하던 과거나 변함이 없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을 억지로 고용하고 사회보장비를 내줘야 하니 울상이다.
내년 만 60세 생일을 맞는 일본인 지인은 회사가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 자신도 인생 계획을 다시 세웠다. 그런데 그리 달가운 표정은 아니다. 업무는 그대로인데 급여는 약 40%로 줄어든다는 것. 명색은 ‘정년 연장’이지만 임금피크제가 세게 작동한다는 얘기였다. 대신 업무 강도는 줄어들 것을 기대했다.
기업들은 2013년 시행된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에 따라 직원이 원한다면 65세까지 고용을 유지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대응은 제각각이다. 2017년 후생노동성 조사에서는 정년 연장이 17%, 정년을 없앤 곳이 2.6%인 데 비해 80%는 일단 정년퇴직을 시킨 뒤 비정규직으로 재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세대가 일자리 때문에 고통을 겪는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의 이런 상황이 그나마 부러운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선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을 믿고 마음 놓고 있다가 ‘때가 되어’ 자신의 근무조건을 듣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얘기로 넘쳐난다. 한때 임원 후보까지 올랐던 사람이 회사로부터 60세 이후 고용조건으로 주 3일 근무에 30%로 줄어든 급여, 일정한 근무처가 없는 자리를 제안받고 일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하는 식이다.
정년 연장을 둘러싼 구체적인 사례를 들여다보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현재 58세인 한 건설회사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대는 유복한 노후를 보내려면 8000만 엔(약 8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들 했다. 60세 정년퇴직 뒤 80세까지 월 30만 엔 정도로 생활하고 약간의 여유를 갖는 정도의 비용이다. 그런데 수명이 100세가 되면 그 2배는 있어야 한다. 우리야 아직 연금이 있어 어떻게든 헤쳐 나가겠지만 아들, 손자 세대가 걱정이다.”
제대로 받아보기도 전에 고갈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의 국민연금 문제를 생각하면 오늘 일본의 현실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100세 시대’에는 사회보장 대책과 고용 대책이 따로 놀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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