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렌더킹 미국 국무부 아랍걸프지역 담당 차관보는 9월 한 달 내내 중동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그가 이토록 바삐 움직인 것은 10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될 중동 국가 정상회의 때문이다. 미국은 이 자리에서 ‘아랍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불리는 중동전략동맹(MESA·Middle East Strategic Alliance)의 밑그림을 완성하기를 바라고 있다.
러시아를 주적으로 보고 유럽 안보를 책임져온 나토처럼, MESA는 이란을 주적으로 삼는 일종의 ‘정치·경제·군사 동맹체’다. 현재 MESA 참여국으로 꼽히는 나라는 이집트와 요르단, 그리고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카타르.
미국은 중동지역 내 이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MESA의 목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MESA는 이란의 공격과 테러, 극단주의에 대한 방어벽이 될 것이며, 미래 중동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견제용’이란 뜻이다.
MESA가 꾸려지면 연간 국방비만 1000억 달러가 넘고, 30만 명 이상의 군대와 탱크 5000대, 전투기 1000대를 지휘하는 새로운 동맹이 탄생하게 된다. 이들이 아랍지역 내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군사훈련을 강화한다면 그야말로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연합체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미 중동 국가들은 수차례 다자안보 체제를 구성했었다. 걸프전 이후 아랍 8개국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모여 공동의 안보와 군사협정 및 경제협력을 약속한 ‘다마스쿠스 선언’(1996년), 이집트가 주도해 결성했던 ‘신(新)아랍동맹’(new Arab alliance·2014년), 사우디가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내걸고 제안한 ‘범이슬람대테러군사동맹’(IMCTC·2015년) 등이 그 예다. 대부분 참여국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지금은 사실상 영향력이 사라져 버렸다.
MESA 탄생의 대표적 걸림돌로 꼽히는 것은 카타르다. 카타르는 GCC의 다른 국가들과 1년 넘게 단교 중이다. 유세프 알 오타이바 주미 UAE대사는 지난해 말 “카타르가 그동안 공격당하지 않은 것은 도하에 있는 미군기지 덕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동안 ‘독자적 실리 외교’ 노선을 걸어온 카타르는 MESA가 공동의 적으로 삼는 이란과 가까워졌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카타르 군주(아미르)는 지난달 양국의 협력을 증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런 카타르가 MESA에 포함되는 것을 GCC 국가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걸프지역의 주권이 위협받지 않는 한 어떤 분쟁에도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집해왔던 이집트가 MESA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그동안 이집트는 시리아, 예멘 내전에 개입하라는 사우디 및 중동 국가의 압박에도 꿋꿋이 버텨왔다. 이집트는 미국뿐 아니라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와도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 현지 언론들은 이미 “명확한 계획 없이 새로운 지역적 관계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며 MESA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MESA 참여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이슈는 많다. 이미 4차례의 중동전쟁에서 미국의 지원을 얻은 이스라엘에 치욕적인 패배를 맛봤던 중동 국가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외교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같이 각국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들에 MESA라는 새로운 동맹은 공통의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외신을 통해 전해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MESA 출범 목표 시기는 내년 1월경이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국제전략연구소의 에밀 호카옘 연구원은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에 MESA에 대한 의견을 이같이 밝혔다.
“(중동 국가 동맹체와 관련해) 2년 정도마다 누군가 큰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리고 1년 동안 사람들은 미친 듯이 일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번듯한 건물, 몇 장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만 남긴 채 끝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