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 인터넷 통신과 정보 검색 등 컴퓨터 지원 기능을 추가한 지능형 단말기인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도 전인 2001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에이아이(A.I.)’가 나왔다.
이 영화는 이미 1968년에 지극히 비관적인 세계관을 탑재한 채 놀라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이 될 뻔했다. 그의 바람을 이어받아 브라이언 올디스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이언 왓슨과 스필버그가 함께 각본 작업을 했다. 이 영화가 제작되기 전 1999년에 스탠리 큐브릭은 사망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들인 스필버그와 큐브릭의 영화관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일 터.
재난과 자원 고갈로 피폐해져 가는 미래의 지구. 인공지능 로봇들의 봉사를 받으며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을 때, 감정이 있는 로봇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하비 박사(윌리엄 허트 분)에 의해 탄생한 소년 로봇이 한 가정에 입양된다. 인간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된 최초의 소년 로봇 데이비드(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분)는 초기화가 불가능하며 재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지게 되면 폐기 처분돼야 하는 운명을 부여받았다. 또한 그의 전자회로엔 “우리를(인간을) 영원히 기억하라”라고 입력돼 있다.
데이비드의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불치병에 걸려 냉동인간인 채로 보존돼 있던 아들 마틴이 구사일생으로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온 후, 아들을 대체할 로봇을 입양한 이 부모에게 데이비드는 쓸모가 없어진 기계일 뿐이다.
프로그래밍된 대로 데이비드는 맹목적으로 엄마를 사랑하고 집착한다. 인간 부모에게 그는 이제 두렵기까지 한 존재다.
“엄마, 진짜가 아니어서 미안해요. 제발 날 버리지 말아요. 내가 인간이 되면 날 사랑할 수 있나요?”라고 울부짖으며 매달리는 데이비드를 인간 엄마, 모니카(프랜시스 오코너 분)는 숲속에 버리고 도망치듯 사라진다. 로봇 사냥꾼들에 의해 포획돼 폐기 처분될 위험을 벗어나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한 그는 동화 ‘피노키오’ 속 주인공처럼 ‘푸른 요정’을 만나 인간이 되어 엄마를 만나겠다는 꿈을 꾼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의 방식대로 데이비드의 소원을 구현한다. 푸른 요정도, 인간도 아닌 또 다른 로봇들을 통해. 비록 단 하루만 허락한 꿈이었지만. 다소 낭만적인 이 엔딩에 대해 후에 많은 이들이 불호의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이 영화가 SF영화이자 철학적 동화로 거듭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리가 전자제품 등 쓰던 기계를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공감할 영혼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이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이 욕구를 가지고, 허구를 상상하며, 자의식까지 가진 데이비드 같은 존재라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로봇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보답으로 사람들은 책임을 질 수 있을까요?”란 영화 초반부 하비 박사에게 물었던 그 누구의 말처럼, 강력한 AI가 등장하게 될 미래엔 인간 앞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유수의 전자업체들이 로봇회사를 인수하거나 지분을 사들이고, 로봇에 전자적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로봇 기본법이 발의돼 있는 지금, 스티븐 스필버그의 17년 전 영화 ‘에이아이’는 로봇을 통해 인간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정적 동화이기도 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