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좌우명은 ‘좋가치’다. ‘좋은 건 같이 보자’의 줄임말이다. 중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고 함께 볼 비디오를 빌려 오는 건, 반 아이들의 mp3 플레이어에 음악을 채워주는 건 늘 나의 임무였다. 숨은 보석을 세상에 알릴 때 가장 뿌듯함을 느꼈다. 좋아하는 것의 가치를 널리 퍼뜨리는 일을 사랑했다. 영상 일을 시작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나만 보기 아까워 ‘찍었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편집했다’.
한 번이라도 영상을 찍고, 편집해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시간들이, 찍음으로써 얼마나 특별해지는지. 찍은 화면들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그 시간 속에 놓인 대상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는지. 얘는 이래서 싫고, 쟤는 저래서 미웠지만, 이상하게 카메라를 통해 보면 스르르 마음이 녹으면서 애정 어린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도 그때 배웠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벌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생각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직업인으로 살아가면서 그것들을 이루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올해 가장 많이 찍은 건 스케치 영상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부탁했다. ‘우리 행사가, 단체가, 회사가 이렇게 멋진 곳이란 걸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스케치 영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아마도 ‘있어 보이는 그림’일 것이다.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었던 나는 ‘있어 보이는 그림 찾기’에 열중했다. 그렇게 내 카메라가 향한 곳은 ‘매력적인 사람들’이었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대화를 하고 있다. 처음엔 카메라로 한 명씩 담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카메라는 특정 사람에게 머문다. 그림이 되는 사람, 마스크가 되는 사람, 캐릭터가 있는 사람, 호감적인 사람. 잘 나온 영상을 보면 흐뭇했지만, 그런 영상이 쌓여 갈수록 마음 한구석이 조금 이상했다. 이 아름다운 장면은 내가 마음을 다해 찍어서 나온 걸까. 아니면 피사체의 매력에 기댄 걸까. 후자를 좇으면서 전자라고 믿는 나를 본다.
그런 생각은 인터뷰 촬영을 하면서도 계속된다. 매력적인 사람, 호감적인 사람, 멋진 사람을 좋아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런 사람들을 만나 촬영할 때마다 느낀다. 세상엔 안 그런 이들이 훨씬 많은데, 내 세상에서 그런 이들은 점점 줄어든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헤아리려는 노력, 하지 않았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서 그런지,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다. 평소에 하는 생각들이 일에 담기고, 일할 때 습득한 태도가 일상에 밴다. 나의 카메라가 외면한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소외에 대해서 생각하는 날들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이면 나는 어떤 직업인이 될 수 있을까. 사랑받아 마땅한 것들을 사랑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 왔지만, 이제는 좀 더 어려운 일을 하고 싶다. 주기적인 직업 윤리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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