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산수, 바보산수로 유명한 운보 김기창은 20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미술가이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병으로 청각을 상실했고 언어장애를 얻었지만 많은 노력 끝에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글씨는 부드러운 곡선 위주인데 이는 예술적 감성을 의미한다. 크기, 기울기, 기초선 등의 변화가 심한 것은 자유분방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창의적임을 알려주는데 이는 모두 예술가에게 적합한 기질이다. 그는 자유롭고 활달하며 힘찬 필력을 바탕으로 풍속화, 화조도, 문자도, 극단적인 추상에 이르기까지 구상, 추상의 전 영역을 넘나들었다. 예수를 한복을 입은 한국인으로 묘사한 동양화를 그리는 등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술가로서의 운보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런데 운보의 글씨에는 큰 장점만큼이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우선 불규칙성이 지나치게 심하다.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은 의지가 박약해서 외부 환경에 끌려다니는 특징이 있다. 또 ‘ㄹ’의 끝부분이 얼버무려지거나 선이 지나치게 짧은 등 마무리가 소홀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는 변덕스럽고 무책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빠짐없이 첫 글자가 매우 커서 과시욕과 무대기질을 보여준다. 운보의 인생에 큰 오점이 된 친일 행적은 이런 성향들이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가 된 후 일제 군국주의에 동조하고 총독부 전시체제와 문예정책에 반복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 고무하는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완전군장의 총후병사’를 그리는 등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펼쳤다. 운보는 뛰어난 재주와 함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제강점기는 그의 약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더라면 큰 오명을 뒤집어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비운의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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