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부형권]전혀 다른 ‘G2(미국-중국)’가 전쟁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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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국제부장
부형권 국제부장
같은 말을 해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리 들릴 때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험한 말을 많이도 했다. 2016년 대선 유세 땐 “미국을 강간(rape)해 온 중국을 이대로 놔둘 순 없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을 “죽이고 있다(killing)”란 표현도 자주 썼다. 트럼프를 찍었다는 점잖은 미국인 사업가에게 “저런 저급하고 노골적인 발언도 지지하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아니요. 그런데 트럼프는 타고난 협상가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대(對)중국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과장된 큰소리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설명이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다르다. 인상 그대로 정통 보수주의자에, 사생활 깨끗한 군더더기 없는 정치인이다. ‘트럼프는 충동적이지만, 펜스는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워싱턴 정가에 퍼져 있다. 트럼프 탄핵 이슈가 고조될 때마다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최악의 상황(탄핵)을 맞아도 ‘펜스가 대통령’”이란 심리적 안전장치가 작동한다. 그런 펜스 부통령이 4일 허드슨연구소에서 ‘대중국 선전포고’ 같은 연설을 했다. 약 4700단어(200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약 105장) 분량의 40분 연설 요지를 단순화하면 이렇다.

“중국은 지난 17년간 국내총생산(GDP)이 9배 커져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됐다. 중국의 오늘은 미국이 만들어줬다(We rebuilt China). 역대 미국 정부들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인권과 자유도 확산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자유에 대한 중국 국민의 꿈은 여전히 요원하다. 배은망덕하게도 중국은 불공정 관세, 수입 제한, 환율 조작, 기술 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도둑질 등으로 엄청난 대미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중간선거 개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 죽이기’까지 시도하고 있다. 이런 중국에 단호히 맞설 것이다. 각오하라.”

트럼프의 요란한 공갈(恐喝)은 무섭지 않았는데, 펜스의 차분한 공언(公言)은 공포스럽다. 트럼프의 말은 ‘협상용 치기(稚氣)’로 들리는데, 펜스의 말은 ‘전쟁용 무기(武器)’로 들린다. 중국 외교부는 연휴 기간인데도 대변인 성명을 두 번이나 내 “터무니없는 날조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중국 관영 매체와 전문가들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악순환이 불가피해졌다”며 항전(抗戰)의 자세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과거 미국-소련 냉전에 이은, ‘제2차 냉전’의 서막이 올랐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는 ‘신냉전(a New Cold War)’이라고 적었다.

“한국에선 미국과 중국을 ‘G2’(주요 2개국)라고 표현하던데, 체제가 전혀 다른 두 나라를 어떻게 한 그룹(Group of Two)으로 묶을 수 있나요. 나라 크기와 파워만 중요하고 이념이나 가치는 중요하지 않은가요?”

한 일본 언론인이 최근 사석에서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이다. 무역에서 발화한 미중 신냉전도 궁극적으론 체제 가치 이념의 진영 싸움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전망도 곁들였다.

미소 냉전 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여전히 한국의 혈맹(血盟)이다. 그러나 중국은 적국(敵國)에서 최대교역국으로 됐다. 한국의 신냉전 대응 전략이 미소 냉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난도 방정식 풀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약 한국을 향해 미국이 “자유 공정 상호주의를 훼손해 온 중국을 같이 혼내주자”고 손 내밀고, 중국이 “트럼프의 보호무역과 이기주의에 함께 저항하자”고 손 내밀면…. 어느 손을 잡아야 하나? 두 손 다 잡거나 아무 손도 안 잡을 수 있나? 참 어렵다. 이런 고민에 대해서도 정부가 “충정은 이해하나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해주면 참 좋겠다.
 
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
#미국#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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