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일곱 그러니까 작년에
어머니가 삐져 말려주신 호박고지
비닐봉지에 넣어 매달아놨더니
벌레가 반 넘게 먹었다
벌레 똥 수북하고
나방이 벌써 분분하다
벌레가 남긴 그것을
물에 불려 조물조물 낱낱이 씻어
들깻물 받아 다진 마늘 넣고
짜글짜글 졸였다
꼬소름하고 들큰하고 보드라운 이것을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도 갖다 드리자
그러면
벌레랑 나눠 먹은 것도 칭찬하시며
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
내년에도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
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즐겨 묻는다. 어떤 시가 좋은 시냐고. 정답은 없다. 좋음의 답이 있으면 그건 좋은 게 아니다. 좋으니까 오히려 답이라든가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 드리고 싶다. 마치 내 이야기를 쓴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면 좋은 시라고 말이다. 이를테면 복효근 시인의 ‘호박오가리’를 읽고 자신의 호박오가리와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면 이 시는 그의 좋은 시가 된다.
호박을 오리거나 썰어 말린 것을 ‘호박오가리’라고 한다. 이것은 흔하면서도 쓰일 데가 많은 식재료다. 말린 것은 불려서 나물 해먹고, 된장찌개에도 넣어 먹는다. 어머니는 늘 넘치게 주시고, 자식은 늘 챙겨 먹지를 못하니 호박오가리는 쓰이질 못했나 보다. 벌레 핀 호박고지를 발견하고 시인은 서둘러 요리를 시작한다. 어머니가 주신 것이니 사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귀한 음식이다.
우리 집 베란다에도 저 호박오가리가 있다. 그것 역시 내 어머니의 투박한 손이 썰고, 내 어머니 집의 햇살이 말려준 것이다. 아시겠지만, 호박오가리의 실체란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고속버스를 타고 와서 이때까지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매년 호박오가리를 받을 수 있기를 나 역시 오래도록 바라고 있다. 이렇게 이 시는 복효근 시인의 시이면서 나의 시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신의 기억 속에 혹은 마음 안에 호박오가리가 있다면, 이 시는 바로 당신의 시이기도 하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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