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4차 산업혁명 부자’를 향한 따가운 시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일본 인터넷쇼핑몰 ‘조조타운’을 운영하는 마에자와 유사쿠 사장(42)이 달 여행을 결정했다는 소식에 일본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그럴 돈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 엄청난 금액을 자선사업에 쏟아붓는 미국의 부호들과 비교하기도 하고. 아예 부자에 대한 과세 강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가 달에 가기 위해 미국 우주개발기업 스페이스X에 낼 금액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인터넷에서는 1000억 엔(약 1조 원)이라는 숫자가 떠돌아다닌다.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미 경제지 포브스의 2018년 억만장자 랭킹에 따르면 마에자와 자산이 2830억 엔이니 부담하지 못할 금액도 아니다. 평소 명차나 자가용 제트기, 고가의 그림 매입 등 과격한 씀씀이로 화제를 불러온 그의 지론이 “많이 써야 많이 벌리더라”이다.

대표적인 문제 제기 주체는 ‘하류노인’의 저자로 빈곤 문제에 매달리는 비영리단체(NPO) 법인 대표 후지타 다카노리 씨. 그는 트위터를 통해 “마에자와 사장뿐 아니라 자본가는 노동자에 대한 분배율을 높여야 한다. 빌 게이츠처럼 비영리사업에 대한 기부도 했으면 한다. 사회보장 재원은 모자라고 복지 현장은 피폐해지고 일본의 자본가들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시기질투에 불과하다. 자기 돈 자기 마음대로 쓰는데 왈가왈부할 것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새삼 느낀 것은 일본 사회에서 부자에 대한 시선이 암암리에 차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자들이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8일 밤 NHK에서는 4차 산업혁명 이후 ‘일자리’ 문제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게스트 출연자는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과 국립정보학연구소의 한 교수였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발달로 미래사회에서 직업이 사라지면서 자본주의의 기본 요소인 자본 노동 생산의 순환이 깨질 수 있다. 앞으로 AI와 로봇을 보유한 소수 자본가들에게만 부가 집중될 것이고 사회의 부가 그곳에서 정체된다면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다”는 지적과 우려가 이어졌다.

방송을 보면서 조마조마했다. 손정의야말로 ‘AI와 로봇을 앞장서서 도입해 부를 축적하는 자본가의 전형’ 아닌가. 5일 일본 시가총액 1위인 도요타자동차와 2위인 소프트뱅크는 ‘손을 잡고 차세대 이동(자동운전) 서비스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는데 두 기업의 기대와 달리 일본 여론은 냉랭한 편이다. 자타 공인 일본 최고 부자인 손정의도 달라지는 사회적 기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같이 출연한 정보학연구소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 로봇세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다. 자본가들은 부를 사회에 돌려줄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며 정색했다. 이에 손정의는 처음엔 “로봇세는 발전에 대해 징벌하는 것이다. 인류가 진화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반론을 폈다. 그러나 말미엔 “우선은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그 다음에 사회에 공헌한다는 것에는 찬성한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손정의와 마에자와는 맨손으로 시작해 세계적 부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신흥 부자다. 손정의의 ‘선 집중투자, 후 사회공헌’이든, 마에자와 식의 ‘번 만큼 즐기자’든 자기 방식을 주장하는 걸 뭐라고 할 순 없다. 다만 자본주의의 표상이자 4차 산업혁명의 상징 같은 이들에게 점점 더 따가운 시선이 쏠리는 최근 분위기를 보면서 발전을 위한 자본 집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하류노인#4차 산업혁명#인공지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