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문턱에 걸려 놓쳐버리듯 내는 잡지와 기사건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내비쳐 주는 지인들이 있다. 감사한 일. 그러나 굳이 기대를 저버리며 글을 시작하자면 이 칼럼의 주제를 듣는 반응은 어째 한결같이 심드렁했다. 20대 후배 하나가 내놓은 솔직한 답은 이랬다. “사실 007 영화 한 번도 본 적 없거든요.” 30대인 나는 조금 당황했다가(설마 한 편도 안 봤다니…) 이내 걱정 말라고 답했다. 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이 칼럼은 ‘007에 무심한’ 사람들에게 더 가까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007은 소설가 이언 플레밍의 손에 만들어져 60년 넘도록 영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군림한 스파이 캐릭터다. 오늘 다루려는 것은 그중에서도 영화의 ‘캐스팅’ 부문. 007 역을 맡는 배우에는 늘 영국 언론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007이 ‘당대 최고의 남자’란 칭호에 다름 아닌 배역이며, 해당 결정에 영화계, 팬덤, 도박사들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의 후임을 논하는 근래의 베팅에 좀 특이한 지점이 있다.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느끼하게 발음해 볼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특정 인물상이 있다면, 현재 거론되는 배우 몇이 이를 크게 비켜 나간다는 점이다. 최초의 ‘블랙 007’이 될 이드리스 엘바부터 ‘여성 007’ 질리언 앤더슨, ‘무슬림 007’이 될 리즈 아메드까지. 시대에 부응해 콘텐츠의 성격이 급선회할 것이라 보는 의견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사실 그럴 법도 하다. 007 시리즈는 ‘정치적 올바름’ 측면에서 늘 논란이 되어 왔으니까. 이를테면 국가 간 관계를 손쉽게 선악 구도로 선 긋고, 인종차별적 표현을 쏟아내며, 여성을 부적절하게 소비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디언, 데일리메일, 더 선 등 유력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옛 007 시리즈를 비난하는 여론이 만연한 실정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정치적으로 완전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하물며 역사적 가치가 있는 콘텐츠라면 좀 더 감안해야 할 터. 다만 구태의연함은 또 다른 문제다.
최근에 대니얼 크레이그가 딸을 포대기로 안고 거리를 활보하다 파파라치에게 포착된 사건이 있었다. 문제는 방송인 피어스 모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 사진을 조롱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 너까지?!’ 게시물에는 #포대기 #남성성을 잃은 본드라는 해시태그도 달려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 중 일부는, 잠수복 안에 턱시도를 빼 입고 여성 편력을 휘두르는 스파이는 근사한 반면 자신의 아이를 안은 아버지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세상에나, 2018년에, 아직도 말이다.
그가 모르는 건 그런 유의 ‘남성성’으로 회자할 때 007이 오히려 새삼 늙고 허약해진다는 사실이다. 56년이 넘도록 ‘맨박스’에 갇혀 있는 마초가 오늘날에도 근사해 보일 수 있을까? 젊은층이 007에 흥미를 잃어가는 건 ‘나빠서’일까 ‘구려서’일까? 소니픽처스와 바버라 브로콜리 프로듀서가 이런 질문을 충실히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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