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글씨는 보기에도 멋지지만 필적학으로 접근해도 흠잡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다. 글씨가 사람의 내면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한다면 선생은 군자나 대인과 같은 이상적인 인간의 수준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형태가 네모반듯하지만 마무리가 길게 뻗치다가 왼쪽으로 향한다. 네모반듯한 글씨를 쓰는 사람은 반듯하고 곧은 사람이다. 이들은 보통 보수적이고 이성적이며 조심스럽다. 하지만 선생은 글자의 간격이 충분히 넓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용기도 갖추고 있었다. 필획이 아래쪽으로 가면서 유난히 왼쪽으로 휘는 것은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선생은 당시 사회가 직면해 있던 각종 해체 현상을 직시하고, 과거제 개혁, 토지 개혁 등 각종 사회 개혁 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글씨의 속도가 꽤 빠르면서도 ‘書(서)’자 중에서 가로획의 간격이 정확하게 균분되는 등 흐트러짐이 없다. 판단이 빠르고 활동적이며 즉흥적이고 정보의 흡수력이 빠르면서도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글자의 크기도 적당한데 대소의 변화를 주어서 정밀함, 사회성, 표현력도 갖추었다. 실학사상을 집대성하고 수많은 저작을 남긴 데는 이런 성향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필획이 깨끗하고 힘이 있어서 단아한 느낌을 준다. 마음씨가 맑고 내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 글씨를 쓰기 어렵다. 모음의 시작 부분에서 비틀지 않고 곧바로 내리긋는 것은 꾸밈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약용의 글씨는 절묘하게 중용의 덕을 갖추었다. 기본적으로 둥근 형태를 보이지만 모서리에 각이 종종 보여서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규칙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글자의 간격이나 기초선, 필획의 처리에서 종종 변화를 주고 있다. 신의, 높은 지성, 고매한 인품, 개혁 의지를 갖추었으니 총명함이나 인품에서 조선의 왕 중 가장 수준 높았던 정조가 선생을 그토록 ‘애정’했을 것이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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