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4〉벼랑 끝에 선 바다, 내 탓이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6일 03시 00분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태풍이 휩쓸고 간 바닷가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생활 쓰레기가 밀려와 언덕이 된 바닷가에서 뭔가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목적 없는 보물찾기였다. 재밌는 물건이 숨어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온종일 쓰레기와 놀았다. 소년 시절의 태풍에 대한 내 기억은 그렇게 거대한 쓰레기더미로 각인되었다.

태풍은 바다가 품고 있던 쓰레기를 육지로 돌려보낸다. 필자는 남해군 어촌조사를 하며 태풍 볼라벤을 맞이한 적이 있다. 볼라벤이 마을 해변에 가져다 둔 해양 쓰레기를 치우려 적재량 25t과 5t 트럭이 번갈아가며 25회를 운행했다. 다 치우지 못했다. 곧이어 들이닥친 태풍 산바도 비슷한 양의 쓰레기를 마을 해변에 다시 쌓아 올렸다. 가장 큰 쓰레기 매장지는 바다였다.

김포에서 임진강을 끌어안은 한강과 개성에서 흘러나온 예성강이 강화 북단에서 만난다. 한 줄기는 김포와 강화 사이를 가르는 염하수로가 되고, 또 다른 줄기는 석모수로를 통해서 서해와 만난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천혜의 어장이 요즘은 천혜의 쓰레기 배출구가 되었다. 강화 어민들은 올가을, 한강에서 밀려온 쓰레기 때문에 조업을 중단한 날이 많았다.

그물에 쓰레기가 걸리면 물길을 막아서 그물이 찢어진다. 또 어획물을 선별하느라 일손이 몇 배로 든다. 오랜만에 조업이 활기를 띤 며칠 전, 강화도 남산포서의 일화다. 어민이 새우에 섞여 있는 불순물 선별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손님이 다가왔다. 어획한 새우에 플라스틱 조각 등이 많이 섞여 있는 걸 보고 “왜 이렇게 더럽냐”는 반응을 보였다. 어민은 덤덤하게 “이게 다 아줌마처럼 서울 사람들이 버린 쓰레깁니다. 물고기보다 쓰레기가 더 많이 걸려요”라고 대꾸했다. 손님은 두말없이 선별한 새우를 사 갔다.

어민들도 할 말은 없다. 폐통발이나 엉킨 그물의 줄을 자르고 바다 속으로 폐기, 조업하다가 커피봉지, 라면봉지, 담뱃갑 등 바다에 무심코 버리는 일상적인 모습. 어선을 타고 수없이 조업에 동승해 왔지만 불행히도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지 않는 어선을 본 적이 없다. 폐그물 600년, 플라스틱 500년. 자연분해되는 시간이다. 바다로 방출된 쓰레기는 먼바다에서 제7대륙으로 불리는 섬을 만들고, 연근해의 쓰레기는 우리의 해안을 뒤덮는다. 그리고 물고기 배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우리의 배 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인간 욕망의 산물인 쓰레기는 재앙으로 반격해 온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산업화의 역사는 쓰레기 생산의 역사다. 인류는 수만 년을 나무 줄기나 천연 섬유로 그물을 만들었다. 합성섬유 재질의 그물은 1950년대 도입되어, 60년대 중반 우리의 어촌에 확산됐다. 50년이라는 짧은 세월, 바다 속은 파괴됐다. 지구상의 척추동물 중 60%가 살고 있는 바다는 벼랑 끝에 섰다. 바다라는 공유자원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기에 개인의 이기심이 쉽게 작동한다.

하루에 커피 네댓 잔을 마시는 나를 위해 아내가 텀블러와 스테인리스 빨대를 진즉에 챙겨줬으나, 외면하고 있었다. 오늘부터라도 카페 갈 때는 텀블러를 내밀며 “여기에 주세요”라고 멋지게 외쳐보리라. 바다를 쓰레기장으로 만든 범인은 바로 나였기에.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강화도#조업#해양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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