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마음의 창에 별이 된 시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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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아무도 동행할 수 없다/보던 책 덮어놓고 안경도 전화도/신용카드도 종이 한 장 들고 갈 수 없는/수십억 광년의 멀고먼 여정/무거운 몸으로는 갈 수 없어/마음 하나 가볍게 몸은 두고 떠나야 한다/천체의 별, 별 중의 가장 작은 별을 향해/나르며 돌아보며 아득히 두고 온/옆집의 감나무 가지 끝에/무시로 맴도는 바람이 되고/눈마다 움트는 이른 봄 새순이 되어/그리운 것들의 가슴 적시고/그 창에 비치는 별이 되기를 ―홍윤숙, ‘여기서부터는’

고 홍윤숙 시인의 생애 마지막 시집 ‘쓸쓸함을 위하여’에 실린 시다. 3년 전 이맘때 깊어가는 가을, 선생님은 하느님의 품에 영원히 안기셨다. 사제가 되려는 나에게 선생님은 때로는 큰누나처럼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내 삶의 중요한 대목마다 멘토가 되어 주셨던 분이다.

늘 잔잔한 웃음으로 타인을 배려하시는 선생님은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늘 꼿꼿하고 단아하셨다. 철저한 자기 성찰로 허세를 허용치 않던 그가 바라보는 이 세상은 철저히 ‘타관’이었다. 그 타관에서 맞닥뜨리는 깊은 비애와 비장함은 자기애로부터 나오는 감상이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에 감춰진 ‘진리의 빛과 존재의 실상’을 향한 ‘운명적 목마름’이었다.

그는 “시는 내 생을 관통해간 한 발의 탄환”이라 했다. “그 탄환은, 더 깊이, 더 속으로, 더 뜨겁게 내 생을 관통하여 상처를 남겼고 그 상흔은 황홀한 상흔이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생애는 전쟁의 참혹함은 물론이고 대립과 혼동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그의 역사의식은 “어떻게 품위를 지닌 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니고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맞닿아 있었다.

조광호 신부·화가·인천가톨릭대 명예교수
조광호 신부·화가·인천가톨릭대 명예교수
이제 그는 치열하고 처절하게 자신의 내면과 역사 속에 절규했던 목소리를 멈추고 저승과 이승의 경계, 타향과 본향의 경계에서 낮은 목소리로 아득한 그리움의 노래를 부른다. 그는 바람이 되고 새순이 되고 별이 된다. 고적한 들녘, 마지막 햇살같이 초연한 시인의 목소리가 더없이 그리운 가을이다.
 
조광호 신부·화가·인천가톨릭대 명예교수
#홍윤숙#여기서부터는#쓸쓸함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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