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45〉달고 매력적인 빨간 맛, 사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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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그린마켓의 사과 판매대.
미국 뉴욕 그린마켓의 사과 판매대.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서양의 고전서적과 예술작품에서 사과처럼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과일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 것 같다. 황금사과로부터 시작된 트로이 목마와 그리스 신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지역인 사마르칸트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마법 사과의 탄생지이다. 서양인들이 하루 한 알의 사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전 오랫동안 돌았던 이야기다. 17세기 밀턴의 실락원 이후 아담과 이브 하면 사과를 떠올리게 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사과처럼 정확히 표현된 이미지가 아니었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사과는 야생에서는 작고 새콤한 것이 특징이다. 요즘에도 자생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에서 키워졌지만 16세기 영국에서 크게 품종이 개발된 이후 17세기 아메리카로 옮겨져 전 세계로 확산됐다. 현재까지 7500여 종이 개발됐다.

1980년대 나는 뉴욕 맨해튼의 유니온스퀘어 근처에서 일을 했다. 요즘엔 거의 매일 오픈해 관광객으로 더 붐비는 그린마켓이 당시에는 평일에 주차장이, 주말엔 그린마켓이 열리는 장소였다. 근교의 농장에서 직접 키운 농산물과 수제 가공식품, 빵, 쿠키와 파이 등 먹거리가 대부분이었다. 신선하고 저렴한 가격 덕에 일주일 치 장을 보려고 주말을 기다리는 뉴요커가 많았다.

그 시장에서 이맘때가 되면 유기농, 무농약, 일반 사과로 구분돼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직접 만든 잼과 애플사이다도 꼭 사게 되는 물건이다. 해가 질 무렵 농장주들은 팔고 남은 물건들을 근처 단골식당과 연결해 박스 단위로 헐값에 거래하기도 한다. 짐을 챙겨 다시 농장으로 돌아가기 전 저녁식사로 사과 값을 대신하기도 했다.

맛있고 보기 좋은 사과를 개발하고 보전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우량종으로 인정되는 사과는 씨로는 보전하기가 힘들어 가지치기로 번식시킨다. ‘그라니 스미스’라는 초록사과는 호주 시드니에서 개발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 대부분은 밝은 주황색이 돋보이고 바닥 부분이 노르스름한 사과를 달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과를 생산하기 위한 농장주들의 노력은 대단하다. 큰 사과를 얻기 위해 작을 때 종이에 싸 두었다가 커진 후 사과 잎들을 제거하고 반사시트를 이용해 햇빛의 일조량을 높인다.

반면 자연 그대로 방치한 상태에서도 맛과 영양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과가 있다. 크기도 일정하지 않고 붉고 푸른 얼룩이 있지만 더 달고 매력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가다. 요즘 일본에서 더 선호하는 사과가 됐다.

나의 20대 시절 어느 가을, 영국 서머싯을 여행했을 때다. 오래된 마을 안 고택들 사이 군데군데 잘 정리된 사과 정원과 나뭇잎 사이로 파란하늘과 햇살이 내려앉았다. 주변엔 떨어진 사과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사과를 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사과를 기다렸다가 주워 애플 사이다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는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과나무와 발에 차이는 사과,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문득 뉴턴을 떠올렸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일까.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사과#그린마켓#그라니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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