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31〉포장의 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일 03시 00분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떠있는 부두’. 2014∼2016년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떠있는 부두’. 2014∼2016년
학문이나 기술, 사물의 이치에 통달해 남달리 뛰어난 사람을 달인이라 부른다. 환경설치미술가 부부 크리스토와 잔클로드는 포장의 달인이다. 이들은 낡은 기름통이든, 가구든, 심지어 관공서 건물이나 외딴 섬도 모두 포장해 버리는 독보적인 기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35년 6월 13일, 크리스토와 잔클로드는 각각 불가리아와 모로코에서 운명처럼 같은 날 태어났다. 1958년 파리에서 처음 만난 이후 둘은 줄곧 함께 작업했으며, 미국 이주 후엔 역사적 장소를 포장하는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들을 기획해 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엔 400년 역사를 가진 파리의 퐁뇌프다리, 독일 제국주의의 상징인 독일 국회의사당, 휴양지 마이애미의 열한 개의 섬 등도 포함된다. 부부의 포장예술은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린 행정당국과의 기나긴 협상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2005년 뉴욕 센트럴파크에 설치됐던 ‘더 게이츠’는 뉴욕시와 25년 이상을 협상한 끝에 실현시킨 뉴욕시 최대의 공공미술이었다.

2016년 여름, 이탈리아 북부 이세오 호수에 설치한 ‘떠 있는 부두’ 역시 1970년에 나온 아이디어를 46년 만에 실현시킨 프로젝트였다. 술차노 마을에서 시작해 몬테 이솔라를 거쳐 산파올로 섬까지 연결된 총 3km 길이의 물 위에 뜬 산책로였다. 22만 개의 고밀도 폴리에틸렌 큐브를 결합해 만든 보도는 10만 m²의 노란 천으로 포장됐다. 조용했던 시골 호수의 풍경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은 이 특별한 부두 길을 걷기 위해 16일 동안 120만 명이 다녀갔다. 그해 세계 최다 관람객을 기록한 전시였다.

외부 지원을 받지 않는 크리스토는 200억 원에 이르는 이번 프로젝트 비용도 자신의 작품 판매를 통해 조달했다. 전시가 끝난 뒤 사용된 모든 재료 역시 완전히 수거돼 재활용되었다. 소수의 부자 컬렉터가 아닌 모두를 위한 열린 예술을 만들고 재활용으로 마무리하는 이 부부야말로 예술의 의미와 이치를 통달한 진정한 예술의 달인이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크리스토#잔클로드#떠있는 부두#설치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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