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선희]‘후기’를 ‘후기’로 쓸 수 없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일 03시 00분


박선희 문화부 기자
박선희 문화부 기자
요즘은 ‘리뷰(후기)’ 없이는 되는 게 없다. 영화나 책을 선택하는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소비, 교육 등 중대사에 이르기까지 다들 리뷰 검색부터 한다. 남들 경험담을 열심히 찾는 만큼,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소소한 후기를 올리는 이도 많다. 비슷한 이유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했는데, 얼마 전 한 게시물을 포털사이트가 강제로 내려버렸다. 제법 규모 있는 유아용품업체 서비스에 실망한 경험을 썼더니 해당 회사가 문제를 삼아서였다.

해명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글을 차단한 게 황당했다. 찾아보니 비슷한 일을 당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 실제 명예훼손의 성립 여부는 업체에서 소송을 걸 경우 비방 목적이 있었는지 등을 따져 법적으로 다퉈야 한다. 하지만 일단 업체에서 포털에 피해신청을 하기만 하면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30일 동안 온라인 게시물 중단이란 ‘임시조치’가 실행돼 버린다.

물론 임시조치는 인터넷 게시글 때문에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당한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피해 접수와 실행은 이처럼 즉각적이고 간단한 데 비해 반론 절차는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아 복잡하다. 부당하다고 생각해 이의신청을 하려면 사유 해명 등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후 이어질 수 있는 법적 공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엄포도 받는다.

이처럼 과정이 번거롭고 부담스럽다 보니 그저 일상 경험담을 나누려던 평범한 시민들은 게시물을 일방적으로 내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참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포털 임시조치는 최근 5년간 200만 건을 넘어섰지만, 이의 제기는 7.5%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추후 분쟁 가능성까지 감수하면서 이의신청을 해도 실제 게시물이 복원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명예훼손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일단 자기들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입막음하려 이 제도를 악용하는 업체들이 나오기 쉽다는 뜻이다. 자유로운 인터넷 바다에서 왜 그렇게 ‘좋은 후기’들만 넘치는지 짐작이 가는 이유다. 정보통신 시대에 음식점, 온라인 쇼핑몰, 소비재 기업에 대한 생활밀착형 경험조차 솔직하게 나누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포털의 임시조치는 법 취지와는 달리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시킨다는 지적으로 개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자본, 규모 면에서 우위인 기업이 소비자를 압박해 입맛에 맞는 후기나 평가만 유통되도록 만드는 꼼수로 사용해선 곤란하다.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많지만 개정안은 계속 계류 중이다.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동일한 관점에서 표현의 자유와 이의 제기를 형평성 있게 보장해주는 것 역시 소중하지 않을까.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리뷰#후기#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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