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딸에게 시험지와 답안지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서울 숙명여고 전임 교무부장 A 씨(53)에게 2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8월 강남학원정보 사이트에서 ‘A 씨 쌍둥이 딸의 성적이 수직 상승해 올해 2학년 1학기 문·이과 각각 1등에 올랐다’며 처음 부정 의혹이 제기된 지 3개월 만이다. 경찰 수사 결과, 시험지와 답안지 검토·결재권자인 A 씨가 올해 2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교무실에 혼자 남아 야근을 했고 쌍둥이 딸 휴대전화에선 시험 답안을 적은 메모가 발견됐다.
이번 숙명여고 사태는 내신 경쟁이 치열한 강남 명문고교에서 일어난 데다 교사가 직접 부정행위에 가담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내신 비리보다 파장이 컸다. 학교는 자녀인 학생이 치르는 시험 출제 및 평가 과정에서 부모인 교사가 배제돼야 하는데도 이를 방관했고, 의혹이 불거지자 ‘쉬쉬’ 덮으려고만 했다. 교사가 학생평가에 절대적 권한을 갖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의 문제 제기도 어려웠다. 이런 폐쇄적인 학교 문화 탓에 교육계는 숙명여고 사례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7월 광주 B고교에선 행정실장이 시험지를 복사해 학부모에게 건넸다가, 지난해 10월 경기 C고교에선 교사가 학교운영위원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수정하다 적발되는 등 내신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내년 대학 신입생의 76%는 고교 내신을 바탕으로 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생부교과전형 등으로 진학한다. 고교 내신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면 대입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고 결국 공교육 위기를 부추긴다. 교육부는 내신 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고교 교사와 자녀를 한 학교에 배치하지 않는 ‘상피제(相避制)’를 도입하고 시험지 인쇄·보관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미봉책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내신 불신은 쌓여갈 것이다.
학교 단위로 내신 시험이 치러지는 한 이런 비리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외국처럼 주요 과목 문제은행을 구축해 출제하거나 성적을 ‘교사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등 내신 투명성을 높일 제도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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