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금융투자 회사인 미래에셋의 미국 골프용품 업체 타이틀리스트 인수는 국내 자본이 세계적인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인수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미래에셋은 휠라코리아와 손잡고 2011년 타이틀리스트와 풋조이를 보유한 미국 아쿠쉬네트를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에 사들였다. 치열한 경쟁에서 아디다스, 나이키,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을 누른 쾌거였다.
미래에셋이 운영업체로 끌어들인 휠라코리아의 경영 노하우 덕분에 2011년 아쿠쉬네트의 영업이익은 60%나 늘었다. 한국 자본이 ‘미국의 자존심’인 타이틀리스트를 인수해 화학적 결합을 이뤄낼 수 있겠느냐는 미국의 질투 섞인 의구심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미래에셋은 이렇게 아쿠쉬네트의 기업 가치를 높여 2016년 10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시켰다. 2억 달러를 투자한 국민연금은 2배 가까운 수익을 내며 지분을 매각했고 5억 달러의 인수금융(대출)을 제공한 KDB산업은행도 5년간 30%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
투자은행(IB)이라고 하면 어렵게 들리지만 이런 거래가 전형적인 IB 비즈니스다. 민간 투자사뿐 아니라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 국책은행이 팀을 이뤄 수익을 내고 국가의 부(富)를 늘리는 비즈니스다.
정부도 이런 IB의 중요성을 인식해 2011년부터 초대형IB 육성을 추진했고 금융위원회는 작년 11월 미래에셋 등 5개 증권사를 초대형IB로 지정했다. 앞서 2016년 8월엔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이 되면 초대형IB의 핵심인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내주겠다고 발표했다. 발행어음은 은행이 예·적금을 받는 것처럼 증권사가 돈을 조달하는 수단이다. 증권사는 발행어음 발행으로 투자 종잣돈을 마련하고 더 큰 딜에 참여해 수익을 낼 수 있다.
증권사들은 정부 발표를 믿고 열심히 자본을 늘렸다. 자본금 1조 원 안팎이던 미래에셋은 대우증권과 합병하고 증자까지 해 자본금을 8조 원 이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관련 부처들의 움직임을 보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갑자기 문재인 정부는 ‘4조 원이 넘는다고 무조건 발행어음 인가가 되는 건 아니고 금융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단서를 제시했다. 이어 금융감독원은 작년 말 미래에셋 임직원이 그룹 내 골프장과 호텔을 너무 자주 이용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내부거래 조사를 해달라고 의뢰했다. 공정위는 곧바로 조사방침을 발표했고 금융위는 이를 이유로 미래에셋의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거부했다. 애가 타는 미래에셋이 “과징금을 내라면 내고, 처벌을 내리면 달게 받을 테니 빨리 결정을 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공정위는 지금껏 아무런 설명이 없다.
공정위와 금융위에 그 이유를 물어봤다. 공정위는 언제 조사가 끝날지 알 수 없고 내년 상반기에 마무리될지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금융위는 미래에셋 심사는 공정위 조사가 끝나야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금융위의 발행어음 인가가 먼저”라며 초대형IB의 또 다른 업무인 외국환업무 인가도 거부하고 있다. 미래에셋과 함께 삼성증권, KB증권도 정부의 눈치를 보며 발행어음 인가를 자진 철회하거나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당정청 인사들이 입으로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에 돈을 대는 모험자본이 나와야 하고, 금융 혁신을 위해 규제를 풀겠다고 말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아무것도 안 하는 정부의 모습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현 정부 인사가 유체이탈 화법으로 한 말을 빌리자면 이게 진짜 문재인 정부의 현실이고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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