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63〉양기를 북돋우는 사슴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5일 03시 00분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호사가들은 발기부전 치료제의 탄생 이후 한의학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 이면에는 그것의 효과가 녹용의 보양효과를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이 똬리를 틀고 있다. 조선 왕위는 후기로 갈수록 적자 승계가 드물어지면서 왕자들의 경쟁이 줄었다. 대를 잇기에 급급했다. 헌종과 철종은 녹용이 든 처방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만큼 녹용의 보양효과에 대한 조선인의 기대는 대단했다.

세상의 수많은 뿔 중에서 속에 혈액이 존재하는 것은 녹용밖에 없다. 사슴뿔은 머리뼈와 연결돼 있으며 성질은 차갑지만 안에 흐르는 피는 따뜻하다. 차가운 뼈를 뜨거운 피가 밀고 올라가 튀어나온 형상, 그 자체로만으로도 아주 강한 양적인 힘을 보여준다. 피를 만드는 조혈기능과 강력한 양적 에너지를 그 어떤 동물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녹용이 뼈에 양적인 힘이 부족해 생기는 골다공증과 소아의 성장부진 증상 치료, 스태미나 향상에 주로 쓰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과학적 실험결과에서도 남성의 고환에서 일어나는 핵산대사를 왕성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 24대 헌종은 8세에 왕위에 올라 23세에 숨을 거둔 단명한 왕이었다. 절제 없는 성생활로 양기가 극도로 허해지면서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다. 동의보감은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성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나 타고난 체질이 허약한데도 성생활을 많이 한 사람은 원기가 쇠약해져 음식을 먹어도 살로 가지 않고 정액이 절로 흐르며 피로하고 권태감이 심하다”고 적고 있다. 헌종이 죽음을 앞둔 4월 10일, 도제조 권돈인과 나눈 대화에는 폐해가 잘 드러난다. 권돈인이 “옥색이 여위고 색택(色澤)이 꺼칠하시니 아랫사람의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없다”고 말하자 헌종은 “이번의 괴로운 증상은 처음부터 체기(滯氣)가 빌미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부종이 심해지고 소변을 보지 못하는 증상까지 더쳤다”고 했다.

소화는 부숙수곡이라 해 삭히는 기능인 부(腐)와 찌는 기능인 숙(熟)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며 그 과정은 마치 아궁이에 불을 때 가마솥 밥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한의학에선 아궁이의 불을 바로 명문화(命門火)라고 한다. 명문은 ‘생명의 문’이라는 한자 풀이처럼 정기가 모이는 곳으로 남자는 양기가 들어있는 기관이다. 명문의 기능이 약해지면 밥이 설익고 장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흘 후인 4월 13일 권돈인은 뜬금없이 녹용이 포함된 귀용군자탕을 헌종에게 권한다.(승정원일기) 각종 증상의 원인이 양기 부족 때문이라 진단한 것. 4월 18일 귀용군자탕을 먹고 증상이 호전된 헌종이 “녹용과 당귀가 든 보약 백 첩을 연달아서 복용하고 싶다”고 하자 권돈인은 “백 첩이 아니라 천 첩을 복용해야 한다”고 아첨한다.(승정원일기) 철종이 가장 많이 복용한 약재도 녹용이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철인왕후 김씨를 비롯해 부인 8명과 대 잇기에 골몰해 5남 1녀를 낳았다.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방법은 생활습관에 답이 있다. 욕망의 절제와 균형이 핵심이지 좋은 약에 답이 있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사슴뿔#양기#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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