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의 뫔길]대통령의 종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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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 동아일보DB
지난달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 동아일보DB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소중한 애장품으로 묵주반지를 꼽을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천주교) 신자다. 20여 년 전 어머니가 선물한 이 묵주반지를 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문 대통령은 6·25전쟁 피란민들의 판잣집 촌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학교를 마치면 인근 성당에 가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구호식량을 배급받아 오는 게 장남의 일이었다. 자서전 ‘운명’에는 수녀복을 입고 식량을 나눠주던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 같았다는 내용도 있다. 어머니가 먼저 신자가 됐고, 문 대통령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티모테오, ‘하느님을 공경하는 이’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어머니는 지금도 이 성당에 다니고 있고, 문 대통령의 혼인성사(결혼식)도 이곳에서 치러졌다. 김정숙 여사도 ‘골롬바’(평화의 상징 비둘기)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이웃 종교에 대한 문 대통령의 관심은 남다르다. 5월 강원 속초 신흥사의 최고 어른인 조실(祖室) 오현 스님이 입적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스님의 입적 소식에 ‘아뿔싸!’ 탄식이 절로 나왔다”라며 과거 인연을 회고했다. 7월에는 여름 휴가 직전 휴일을 이용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북 안동 봉정사를 찾았다. 대통령이 사법시험 공부를 한 전남 해남 대흥사 동국선원 7번 방은 명소가 됐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이웃 종교들에 대해 대체로 열린 자세를 보여 왔다는 게 세평이다. 그럼에도 최근 문재인 정부와의 불통(不通)을 호소하는 종교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가톨릭 독주와 이웃 종교 ‘푸대접’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문 대통령은 10월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석했다. 한반도 평화라는 의미가 있지만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바티칸 미사 장면을 종교방송도 아닌 지상파TV가 생중계한 것은 지나치다는 게 불교계 주장이다. “교황 ‘알현’을 마치고 나왔던 문 대통령이 밝은 표정이었다”는 청와대 언급에 대해서도 다종교 국가의 국민 정서와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부적절하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9월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은 종교계에 예상밖의 후유증을 남겼다. 7대 종단 연합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회장이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민추본) 원택 스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 원불교 한은숙 당시 교정원장이 종교계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했다. 평양선언을 통해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남북 공동으로 하자고 제안하면서 3·1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천도교가 방북단에서 배제됐다. 이 여파로 천도교 내에서는 집행부 총사퇴론까지 나왔다. KCRP 소속이면서도 역시 방북단에서 빠진 유교와 한국민족종교협의회도 천도교와 마찬가지로 선정 기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방북 기간 중 가톨릭 측만 유일하게 북측 관계자와 접촉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져 특정 종교 특혜 논란도 있다. 원택 스님은 북측과 논의할 의제 등을 준비했고 정부에 여러 차례 그 뜻을 전달했지만 정상회담 성공에 집중해 달라고 해서 개별 만남과 협의는 이뤄지지 못했다는 게 민추본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 요청과 달리 김 대주교는 방북 뒤 열린 간담회에서 “조선카톨릭교협회 강지영 회장과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 (사제 파견 등을) 협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종교계 현장에서 느끼는 정부와의 불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천도교 측은 방북단에서 배제된 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앞으로 항의 공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 대신 “위에서 내려온 결정이라 사정을 모르겠다”(문화체육관광부) “미안하다. 다음에는 꼭 기회를 만들겠다”(대통령시민사회수석실)는 반응이 돌아왔을 뿐이다. 천도교의 한 고위 관계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평양 공동선언에 넣으면서 천도교를 배제한 것은 청와대 참모진의 상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힘센 종단만 초청한 것이냐? 정부가 오히려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계에서도 현 정부와의 소통지수가 김대중 정부 이래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어떤 현안에 대해 입장을 내도 대체로 무반응이고, 필요할 때만 협조를 구한다는 것이다. 한 중견 목회자는 “문재인 정부의 종교관이 ‘종교는 마약’이라는 수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남북 관계가 중시된다고 해도 특정 종교에 의지한 정책과 소통은 곤란하다. 대통령의 종교가 가톨릭이기에 더욱 종교 간 균형과 배려가 필요하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dunanworld@donga.com
#대통령 종교#천주교#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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