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우리 경제가 위기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의 발언을 놓고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과 온라인 공간에서도 공방이 이어졌다.
문맥상으론 경제가 위기 상황이 아니라면 ‘정치적 의사 결정’이 필요할 이유 자체가 없지만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경제가 위기라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는 김 부총리 자신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경제가 위기인지 합의조차 없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그 자체가 위기다.
우선 이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이 첨예하게 갈린다. 여권에서는 ‘언제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보수정당에서 선거 때마다 ‘경제위기론’을 확산시켜 보수를 선택해 달라는 논리를 펴 온 것이 ‘위기불감증’마저 불러온 것일 수 있다. 여권 내에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실제보다 부풀려진 ‘경제위기설’이 기업인 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을 허용한 원인이었다는 인식이 팽배한 듯하다.
사실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없지 않다. 현직 대통령이 재임에 실패한 흔치 않은 사례인 1992년 대선을 예로 들 수 있다. 여러 정치·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선거 당시 미국 경제는 이미 회복기에 들어섰지만 언론의 지속적인 ‘경제위기설’ 설파로 결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권자들도 진영에 따라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른 듯하다. 여론조사기관인 엠브레인이 10월 28, 29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를 살펴보면 ‘보수’ 유권자 중 34.1%만이 문재인 정부의 전반적인 경제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진보’ 유권자의 66.8%는 긍정 평가했다. ‘중도’ 유권자는 거의 반반(45.4% 대 52.0%)으로 갈렸다. 해법은 물론이고 아예 상황 인식 자체가 극명히 다른 것이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합의가 없는 듯하다. 김 부총리와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의 불화설이 이를 뒷받침한다. 장 전 실장은 여러 자리에서 현 경제 상황을 ‘우리 경제 체질이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규정해 왔다. 1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도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다소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경제 수준이 비슷하거나 앞선 나라와 비교해 결코 낮지 않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장 전 실장과 김 부총리 둘 다 경질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서로가 같은 배를 탄 동료조차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경제가 위기 상황인지 아닌지 유권자들에게 확실히 알려야 한다. 경제는 전략적 모호성이나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경제가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왜 현 상황이 과도기적 현상이며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지 유권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안심시켜야 한다. 반면 만약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한다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유권자들의 단합을 이끌어 내는 것이 정부의 리더십이다. 한국민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집 안의 금붙이까지 가지고 나와 경제 살리기에 동참했던 저력이 있지 않은가.
국가적 문제는 언제든 생길 수 있고 대부분 해답이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지 자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이는 매우 암울한 징조이고 그 자체가 큰 위기 상황일 것이다. 사실 경제는 객관적 지표가 풍부한 영역이다. 경제성장률도 있고 실업률도 있다. 이런 영역에서도 위기인지 아닌지조차 합의가 안 된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이미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마저 합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양극단화돼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경제는 위기 상황인가 아닌가? 이제 정부나 정치권뿐 아니라 유권자 개개인이 이 질문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누구도 속 시원히 이 질문에 답을 해 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양극단화된 현주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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