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사이시옷 표기 원리에 대해 배운 바 있다.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넣지 않는 것이 원칙이며 예외는 아래 여섯 개뿐이다.
●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
이 원칙을 이미 아는데도 자꾸 혼동되는 것들이 생긴다. 아래 예들을 보자.
① 허점(○), 헛점(×) ② 헛고생(○), 허고생(×), 헛소문(○), 허소문(×)
모두 ‘허(虛)’와 결합해 생긴 말들이다. 뒤에 온 말은 ‘점(點), 고생(苦生), 소문(所聞)’으로 한자어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표기 원칙에 차이가 난다. ‘허점(虛點)’은 사이시옷을 적지 않아야 하지만 ‘헛고생, 헛소문’은 ‘ㅅ’을 넣는 것이 올바른 표기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새 단어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있는 말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전 말의 의미가 남아 새 단어가 통용되기가 쉽다. 그런데 이전 말을 활용해 만든 새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꽃밭’의 ‘꽃’과 ‘밭’은 모두 실질적 의미를 갖는 말이다. ‘맨발, 맨손, 맨땅’은 좀 다르다. 실질적 의미는 ‘발, 손, 땅’에 있다. ‘맨-’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새 단어 안에서 이렇게 의미가 약한 부분을 ‘접사’라 한다. 위의 ‘맨-’은 단어들의 앞에 붙었으니 ‘접두사’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접사, 접두사’와 같은 말들이 어렵지만 이런 말들 덕에 맞춤법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헛수고, 헛고생, 헛소문’을 보자. 이 단어들은 ‘실질적 의미’에 ‘실질적 의미’가 합쳐진 것들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아무래도 앞부분의 의미가 약하다. 이 단어들은 모두 접두사가 붙은 파생어들이다.
그러면 사이시옷은 새말의 종류 중 어디에 붙는 것일까? 사이시옷은 의미상 ‘…의 …’ 구성일 때 적는다. 단어를 구성하는 앞뒤 요소 모두 실질적 의미를 가질 때 ‘ㅅ’을 적는 것이다. 그러니 ‘헛고생, 헛소문’은 ‘허 + ㅅ + 고생’이라 볼 수 없다. 아무래도 ‘허의 고생’(×)이라는 의미는 추출되질 않으니까.
● 헛걸음, 헛고생, 헛소문, 헛살다, 헛디디다, 헛보다
‘헛수고, 헛고생, 헛소문’은 모두 접두사 ‘헛-’과 결합된 파생어이다. ‘수고, 고생, 소문’에 그보다 의미가 약한 접두사 ‘헛-’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인 것이다. 물론 접두사 ‘헛-’은 어원적으로 ‘허(虛)+ㅅ’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현재, ‘헛’에 든 ‘허’는 실질적 의미를 잃었다. 그래서 ‘헛-’이라는 접두사로 쓰여 ‘이유 없는’, ‘보람 없는’의 뜻을 더할 뿐이다. 이 접두사는 생각보다 많은 새 단어를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가 일생에서 만나는 위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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