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규제가 재산권 침해” 주장, 설득력 없고 사회적 공분만 키워
논란 시작이 국가보조금 유용인 데다 규제 없는 사유재산 권리도 말 안 돼
이익집단은 권리 주장 가능하지만
원아 볼모로 한 지금 협박성 태도는 이익은 고사하고 분노만 불붙일 뿐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정부지원금 유용 문제와 이에 따른 관련법 개정 논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며칠 전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실과 한유총이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사유재산권 침해”, “(유치원 비리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들은) 가짜 엄마들”, “정부지원금을 썼다고 탄압하는 것은 문제” 같은 발언이 난무했다고 한다. 내년에 아이를 보낼 유치원을 알아보고 있는 지인은 유치원 설명회에 갔더니 “사립유치원을 비리유치원으로 몰아 억울하다”는 말만 30분 넘게 하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국가의 교육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기존 질서와 충돌할 수 있다. 너무 성급한 입법이나 독단적인 정책이 진행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것은 이익집단의 정당한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유총은, 이 역할을 너무 못한다.
사립유치원이 사유재산이니 규제를 받으면 안 된다는 주장은 거대담론으로 문제의 본질을 가리려는 전형적인 시도다. 일단 현대사회에 전혀 규제를 받지 않는 사유재산이란 없다. 게다가 이번 사립유치원 사태는 정부지원금 유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가 한유총의 지갑을 가져가려다가 생긴 일이 아니라, 한유총이 정부가 준 지갑에 든 유아학비며 교사처우개선비, 학급운영비 같은 돈을 목적 외로 사용해서 생긴 일이다. 어떤 개혁을 해도 유치원 부지며 시설이 사유재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유총은 사유재산권 침해를 주장하는 한편으로는 사립유치원이 공립유치원에 비해 지원을 못 받아(사실이 아니다) 어렵다는 항의 집회도 했는데, 어느 장단에 맞추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설마 국민이 낸 세금인 지원금은 양껏 받되 그 돈을 어디 쓰는지 밝히고 싶지 않다는 몰상식한 주장은 아니겠지 싶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달리 해석하기 어려워 당혹스럽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3∼5세 아이들은 약 70만 명이다. 재직 중인 유치원 교원 수는 5만 명이 넘는다. 아이들의 부모와 전·현직 교원을 합하면, 유치원 교육에 날마다 직접 관련된 사람만 어림잡아 수백만 명인 셈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지하여 좌파의 정치적 의도에 농락당하거나 사유재산제도라는 근본적 개념에 반대하여 유치원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5만 원, 10만 원씩 걷어가던 추가 학습비, 부실한 급식과 교구, 잦은 교원 이탈 등의 문제를 느꼈지만 반쯤은 교육자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믿고 반쯤은 내 아이가 인질인 마음으로 눈을 감았는데, 드러난 상황을 보니 문제가 커도 너무 커 이토록 사회적 공분을 사기에 이른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사회적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 의제화이지 정치적 탄압이 아니다. 국회에서 방 하나 차지하고 국가가 날강도고 시장경제가 좌파에 승리할 것이라고 자기들끼리 부르짖고, 유치원을 폐원하여 아이들이 갈 곳 없게 하겠다고 유아를 볼모로 잡아 협박하고, 유치원 설명회에 온 학부모들 앞에서 뜬금없이 울분을 토한다고 애당초 탄압이 아니었던 일이 탄압이 될 수 없다. 저토록 설득력도 문제의식도, 윤리도 품위도 없는 이들에게 우리 미래 세대를 맡겨 온 현실이 기막힐 뿐이다.
이익집단이라면 이익을 제대로 주장해야 한다. 여론이 추동하는 개혁에는 당사자집단이 먼저 밝히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허점이 있을 수 있다. 한 번 개정하면 역진(逆進)이 어려운 입법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 유치원 교육에서 공공성 강화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은 지금까지 정부가 유치원 교육의 공공성 확보에 어느 정도 실패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사립유치원의 잘못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정책 실패도 있었을 것이다.
한유총은 관계 이익집단으로서, 그들이 그토록 즐겨 주장한 대로 유치원이라는 사유재산의 소유자로서, 또 어쩔 수 없이 사회의 핵심적인 교육서비스 제공자로서, 최소한 상식적인 시민들이 함께 논의할 가치가 있는 주장으로 공론장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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