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승옥]‘팀킴’을 ‘팀킬’로 이끈 가족주의라는 명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0일 03시 00분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은 대학 때까지 레슬링을 한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컬링의 대부’가 잔뜩 부풀어 오른 ‘만두귀’를 갖고 있는 이유다. 대학 졸업 후 중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레슬링은 언제나 삶의 중심이었다. 재직했던 학교마다 레슬링 팀을 창단하며 선수들을 육성했다. 그러다 운명처럼 컬링으로 진로를 바꾼다. 1990년대, 컬링이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때였다. 컬링 팀 창단을 위해 학교를 찾아다닐 때 관계자들이 자꾸 ‘킬링’이라고 발음했다. “킬링이 아니라 컬링입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던 시절이었다. 김 전 부회장은 전향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럽과 북미의 가족적인 컬링 문화에 매료됐다.”

실제 컬링은 가족스포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어느 종목보다 팀워크가 중요하고, 또 부모에게 배워서 형제자매가 함께하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유지되고 있다. 올 초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우리 대표팀에는 수많은 형제와 자매가 있었다. 미국, 영국, 덴마크, 일본 대표 팀에도 부모자식, 형제자매인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컬링=가족’이라는 철학대로, 그의 가족 모두 컬링과 연을 맺었다. 딸과 사위는 감독이고, 아들은 선수다. 아내도 한때 지도자를 맡았다. 그와 의기투합한 컬링 동지(후배 지도자, 선수 등)들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변변한 시설도 없고, 선수도 부족하고, 예산도 부족했던 때였다.

그는 가업을 키우듯 사재를 털어가며 컬링에 헌신했고, 구성원들도 자기 집안일처럼 생각하며 희생했다. ‘가족주의’로 성장한 컬링은 평창 겨울올림픽 팀킴의 은메달로 꽃을 피웠다. 여자 팀추월의 민망한 팀워크에 분노했던 국민들은 팀킴의 가족 같은 모습에 환호했다. 그런데, 그렇게 가족을 외쳤던 김 전 부회장이 자식 같은 팀킴 선수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됐다. 선수들은 욕설, 폭언, 그리고 불투명한 회계 처리 등 전횡을 폭로했다. 또 ‘그의 가족’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자신들은 더 이상 가족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팀킴에서 팀킬(Team Kill)이 일어났다. 폭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부 기관의 합동 감사가 끝나는 3주 뒤에나 알 수 있다. 다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팀킴을 키워낸 가족주의가 부메랑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주의는 서로 간의 격려, 희생, 양보 등을 통해 기대 이상의 성취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 성과와 보상이 불분명해 구성원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장점과 단점은 상황에 따라 자리를 바꾼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팀킴의 위상은 달라졌다. 그런데도 김 전 부회장 측은 기존의 가족 테두리에 선수들을 넣고 지휘하려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직업 선수’의 권리를 분명하게 요구하며 충돌했다. 조직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김 전 부회장은 이를 간과했거나, 부정했다.

넷플릭스는 “우리는 스포츠팀이지,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가족 같은 사적 관계가 아니라 공적 관계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넷플릭스는 소규모의 비디오 대여회사로 출발해 세계적인 비디오 스트리밍 업체가 됐다. 급성장 과정에서 팀킴과 같은 심각한 갈등을 경험한 회사다. 몇몇 스포츠 전문가들은 팀킴에 대해 “올 것이 왔다”고 얘기한다. 다른 종목의 사례를 통해 예견됐던 일이라는 것이다. 가족주의가 더 이상 팀킴을 담지 못한다면, 새로운 그릇을 만들 필요가 있다. ‘가족스포츠’의 가치는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숨 쉬면 된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팀킴#컬링#가족주의#김경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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