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119구급대원이 응급상황에 취할 수 있는 의료행위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곧 발의될 예정이다. 동아일보가 구급대원이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심전도를 측정하거나 응급 분만한 아이의 탯줄을 자르면 실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기막힌 의료규제를 잇달아 비판하자 2000년 현행 응급의료법이 만들어진 이후 18년 동안 묶여 있던 규제가 풀리려는 조짐은 고무적이다.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의료 규제는 심전도 측정, 탯줄 처리뿐이 아니다. 응급구조사인 119구급대원이 심장이 멎은 환자에게 자동심장 충격기가 아닌 수동 충격기를 사용하는 것이나 당뇨 합병증 쇼크에 빠진 환자의 혈당을 재는 것까지 불법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의료계를 중심으로 ‘사람 죽이는 규제’라는 비판이 번지고 있다.
구급대원은 말 그대로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데 법 조항에 정해진 것만 하고 나머지는 할 수 없게 만든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전형적인 탁상 규제라고도 할 수 있다. 구급대원이 할 수 있는 것만 나열해 놓고 다른 것을 하면 법으로 다스리는 현행 ‘포지티브 방식’을 바꿔 금지 사항만 나열하고 나머지는 모두 할 수 있게 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비단 응급처치 관련 규제뿐이 아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규제혁신을 이루려면 다른 규제도 원칙적으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에도 정부 국회가 관련 규정을 손질하겠다고 했다가 이익집단의 반대에 막혀 흐지부지되는 것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복지부 장관이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 개정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한 지가 1년이 넘었는데 아직 그 어떤 후속조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사람 목숨 살리는 규제를 푸는 데도 이렇게 질질 끄는데, 다른 규제들이야 어떻겠는가. 질기디 질긴 규제의 사슬, 이번엔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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