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 우선 적절치 않은 용례로 따옴표를 남발한 제목에 대해 사과해야겠다(아마도 국립국어원에). 애초에 따옴표 없이 써놓고 보니 어째 너무 당연한 표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직접 ‘서점’까지 가서 ‘책’을 고르고 ‘산다’는 게, 어디 그리 말처럼 당연한 일인가. 사과로 말문을 열었으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억지로라도 생경해진 제목의 어감이 흡족하다.
셋 중 가장 크고 짙은 따옴표가 달려야 할 부분은 단연 ‘서점’일 테다. 인터넷과 택배의 나라답게 출판 시장도 전자상거래가 점령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2017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표 온라인 서점 3사의 매출은 매해 10%대 성장 중이고, 재작년부터는 대표 오프라인 서점 3사의 매출을 넘어섰다. 오늘날 서점에서 팔리는 책은 온라인으로 팔리는 책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도전을 받는 건 ‘책’이라는 형식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전자책 출판사의 매출이 1년 새 17.8%, 전자책 유통사의 매출이 37% 뛰었다. 현재 세계 출판 시장의 5분의 1을 전자책이 차지하고 있으며, BBC의 기사 ‘종이책은 정말로 사라지고 있을까?’에 따르면 ‘책을 읽는 독서’가 10년 내에 비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형태는 형식에도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라서 ‘The Book of Future’ 연구소는 독서가 혼자 하는 무엇이 아니라 게임 같은 것이 될 것이라 예견하기도 한다. 서적 ‘구매’가 재고의 대상이 된 것도 디지털화의 여파다. 책이 파일이나 서비스로만 존재한다면 굳이 높은 비용을 들여 소장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전자책 시장 활황을 타고 국내에도 전자책 정액제 구독 서비스가 생겨났는데, 스타트업인 밀리의 서재부터 리디북스의 리디셀렉트, 예스24의 북클럽까지, 벌써 꽤 각축전이다.
한 분야에 오래 몸담아 수구적이거나 배타적이게 된 부류를 요즘 유행어로 고인 물이라 하던가. 이 글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에 관한 한 나는 확실히 고인 물인 것 같다. 물론 온라인 서점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여행을 앞두고는 늘 전자책 리더기의 구매를 고려하며, 워낙 적독(積讀·책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쌓아두는 것)하는바 구매보다 대여 서비스가 더 적합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편의가 능사는 아니라고 믿는다. 독서라는 경험을 구성하는 건 책의 내용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온라인에선 필요한 모든 책을 찾을 수 있지만 서점에서는 필요한 줄 몰랐던 책을 찾는다”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서점 예찬에 동의하고, 과거에 음반이 그러했듯 책에도 물리적 속성이 있을 때 우리가 그것과 더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으며, 책장에 쌓인 책들은 단순히 지난 독서의 부산물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구현된 나의 지적 여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구태의연하지만, 낙엽이 채 지기 전에 위 제목을 실행에 옮겨 보라는 권유로 글을 맺으려 한다. 나는 고인 물이지만, 동시에 좋은 것들도 때로 사라진다는 것을 몸소 겪어 아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게 늘 예상보다 빠르다는 사실도. 모쪼록 아름다운 서점에서 좋은 책을 만나 탐독하고, 결국 소장에 이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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