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부에선 저출산 ‘극복’이냐, 저출산 ‘대응’이냐, 아니면 저출산 ‘적응’이냐 등 용어 하나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달 예정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방안’ 발표가 다음 달로 미뤄졌다. 그 이유를 묻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재구조화(再構造化)’는 생소한 용어다. 쉽게 풀면 기존 저출산 정책을 ‘리모델링’ 혹은 ‘구조조정’하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년)’을 시작으로 5년마다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현재는 2015년 말 발표한 제3차 기본계획(2016∼2020년)이 시행 중이다. 3차 계획에만 예산 108조 원이 투입된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올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은 1.0명 아래로 떨어져 약 0.97명으로 예상된다. ‘세계 대표’ 저출산·고령사회인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40명에 달한다. 한국의 저출산은 비교 대상이 없는 ‘독보적 수준’인 셈이다.
기존의 5년 단위 기본계획으로는 저출산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한 만큼 큰 틀에서 고치겠다는 것이 ‘재구조화’ 방안이다. 정부는 당초 10월 재구조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1월로 미루더니 다시 12월로 연기했다.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발표 연기 이유는 예산 편성과 당정 협의 등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뾰족한 묘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저출산 극복, 대응, 적응 등 단어 하나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어디다 방점을 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 저출산 대책이 임신 확산, 출산율 상승 등 저출산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면 재구조화 방안은 저출산 대응과 적응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도 큰 이견이 없다.
현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내에선 출산 후 무조건 휴직에 들어가는 ‘자동육아휴직제’, 노사가 절반씩 부담해 기금을 만든 뒤 육아휴직자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부모보험’ 등의 아이디어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아도 고용 절벽, 주거 불안, 무한 경쟁, 불안한 노후 등 아이를 낳지 않는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순 없다. ‘아이에게 물려줄 희망이 없다’며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가 한두 가지 정책으로 생각을 바꾸겠는가.
‘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저출산·고령화 위기는 20∼30년 전부터 예견됐다. 정부는 1961년부터 출산을 억제하는 인구 정책을 폈다. 1987년 출산율이 저출산 국가 수준(1.7명)까지 떨어졌지만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인구제한 정책은 1996년까지 이어졌다. 2006년이 돼서야 저출산 대책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지금의 저출산 극복 정책 역시 20∼30년 뒤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12월 발표할 재구조화 방안에선 저출산 극복 대신 아예 저출산이란 말 자체를 없애면 어떨까. 그저 우리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기초 정책부터 다져나가자는 얘기다. 지금 절실한 건 아기 울음소리가 아닌 청년 웃음소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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