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중국이 변한다는 걸 실감한다면서 드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알리페이다. 거지들도 알리페이로 구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떤 가게에서나 택시에서나 휴대전화를 갖다 대기만 하면 척척 결제가 되니 정보기술(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이 오히려 부러워할 정도다.
박원순 서울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카드 수수료 없는 간편결제시스템을 보급하겠다고 하는데 사업의 정식 명칭이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제로 결제서비스’다. 제로(0)라는 말은 필시 공짜란 뜻인데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의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역시 누군가의 부담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사실상 우리나라 전 은행이 ‘공익적 차원’에서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현금 결제가 한 건 이뤄질 때마다 40∼400원씩 발생하는 이체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건 울며 겨자 먹기 식 일방적 부담이다. 제로페이 출범을 선포한 지 열흘도 되지 않은 18일 한국금융연구원이 이런 시스템은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라는 보고서를 냈다. 공짜가 오래갈 수 없다는 뜻이다.
제로페이가 내세우는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40%라는 높은 소득공제율이다. 같은 현금결제 기반인 체크카드의 공제율 30%에 비해서도 높고 신용카드의 15%에 비해서는 2.7배나 높다. 정부만이 가진 세제 혜택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이는 다른 민간 결제사업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세금 탈루를 막기 위해 현금을 대신한 카드 사용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며칠 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불공정 카드수수료 차별철폐! 자영업 총궐기대회’ 현장을 가봤다. 자본가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어중간한 처지의 가게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나와 여느 강경 노동자 집회처럼 구호도 외치고 삭발식까지 했다. 요구조건은 한마디로 카드 수수료가 너무 높아서 못살겠으니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카드사들 자료를 보더라도 작년 기준으로 연 매출 5억 원이 넘는 가맹점은 2.08%, 그 이하는 우대 수수료율 적용으로 0.8∼1.3% 수준이다. 이윤이 얼마 남지 않는 소매점에서 이 정도면 상당한 부담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수수료 공짜인 제로페이를 하면 될 텐데 하루 생업을 팽개치고 길거리까지 나왔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로페이 같은 간편결제는 이용자들 입장에선 굳이 쓸 매력이 없다는 것이 일리가 있었다. 신용카드처럼 무이자 할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포인트 적립이나 행사 할인 같은 카드사의 서비스에 도저히 못 따라간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으로 극에 달한 소상공인들의 불만 해소책이 임대료 인상 억제와 함께 카드 수수료 부담 감경이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민간에 맡겨두면 될 것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면 될 것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간편결제시장 1위업체인 카카오페이가 최근 제로페이에서 탈퇴한 이유 중 하나도 자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등 정부 주도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편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알리페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당국이 직접 나서지 않고 오히려 사용에 불편한 일체의 규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드 수수료 경감을 위해서나 한국의 핀테크 산업 발전을 위해서나 여러 민간 간편결제업자들이 신용카드, 체크카드와 마음껏 경쟁할 수 있도록 갖가지 규제를 풀어주는 게 더 바람직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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