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지나고 쾌청한 가을이 지나자 또다시 미세먼지의 계절이 돌아왔다. 국내외 요인에 대한 논쟁이 많고 무엇보다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과학자들이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한다고 원망하거나 정부가 무능해서 책임을 묻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작은 나라에 사는 설움이라고 자조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정치인과 환경 외교 고위 공직자들은 정말 국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공론화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에서 성인을 추대할 때 내부 과정 중 하나가 반대의 입장이 돼 반론을 제기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반대파의 입장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사람을 ‘악마의 대변인’이라고 한다. 이 역할은 당연히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잘 해내면 오히려 조직에서 미움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익 집단이 아닌 종교 집단에서 이 역할이 존재한다는 것은 같은 생각의 집단에서 놓칠 수 있는 논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회와 경제, 외교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미세먼지 문제를 따져 볼 때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악마의 대변인이 돼야 하는 이는 학자이기에 듣기 거북할지도 모르겠으나, 필자가 이번 칼럼에서는 그 역할을 해보려고 한다.
만약 국제사법재판소나 유엔에서 한국의 미세먼지 오염 문제가 중국 때문이고 이에 따른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논쟁이 벌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분명 이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들이 증인석에 설 것이다. 이들에게 물을 질문 중 하나는 ‘중국에서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 영향 산정의 정확성은 얼마인가?’일 것이다. 영향 산정은 가정해서 컴퓨터로 계산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필요한 수많은 유체역학 연산과 화학 반응 시작 과정은 너무나 복잡하다. 결국 여러 가정을 하거나 단순화를 시켜야 하는데, 고교 시절의 수학 문제처럼 딱 떨어지는 답이 나올 수 없다. 물론 실측치와 비교해 모델은 끊임없이 개선되지만 모델 환경을 조금만 바꿔도 결과는 크게 다르다. 모델 결과를 국제 분쟁에서 결정적인 증거인 ‘스모킹 건’으로 쓰기엔 큰 제약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실험은 어떨까? 국내에서 채취한 미세먼지 샘플에서 중국에서만 쓰이는 화학물질이 검출됐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국내 미세먼지가 중국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도 물론 이런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화학물질의 검출이 모두 중국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에는 의문이 남는다. 미세먼지는 하나의 화학종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등 무기물질과 미량의 금속, 매우 다양한 종류의 유기화합물이 들어 있다. 또 끊임없이 주변 기체나 다른 미세먼지와 반응해 크기를 키운다. 결국 그 많은 성분 중 중국에서 들어온 성분이 한두 가지 들어 있다고 해서 이를 전적으로 중국에서 왔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마지막으로 나올 수 있는 질문은 ‘중국은 자국의 대기오염을 수수방관하는가?’이다. 지난 한미 대기질 공동 연구에 참여한 미국 대학 석학들은 한결같이 중국의 대기오염물질 저감 노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국의 대기오염 연구를 10년 이상 수행했다. 유럽의 석학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올해 4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지구물리학회에서 초청연사였던 제임스 리 영국 요크대 교수는 중국의 미세먼지는 현 정책만 계속 유지한다면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 단언했다.
결론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미세먼지 논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중립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의 의견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결정적인 증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과 캐나다, 유럽 국가들의 월경성 대기오염물질 논쟁에서 현재 우리가 유지하는 외교적인 협력 이상의 성과가 없었다는 것 또한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킨다. 이런 상황 인식은 우리가 가진 사회 문제 해결 자원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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