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22일 IAEA 이사회 보고에서 북한 영변 핵시설 단지에서 원자로 부품 조립과 미완성 원자로에 부품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이 위성을 통해 관측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지 사찰이 이뤄져야 이 활동의 본질과 목적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변 핵시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미국의 상응 조치에 따른 영구적 폐기 조치’ 의사를 밝힌 곳이다.
북한이 비록 조건부이긴 하나 폐기 대상으로 제시한 영변 핵단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앞둔 ‘몸값 올리기’ 의도일 게 뻔하다. 비핵화 의지 천명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을 계속 생산하는 모습을 외부에 노출함으로써 적절한 보상 없이는 폐기하지 않겠다는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영변 핵단지는 핵시설 등 각종 건물 390여 개가 모여 있는 곳이다.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5MW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이 있고, HEU를 생산하는 우라늄 농축공장도 있다. 하지만 이미 낡고 오래돼 방사능 누출 위험까지 있다. 2007년 ‘냉각탑 폭파쇼’를 벌인 곳이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으로선 수명이 다한 시설이어서 비핵화 이벤트용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비밀 시설을 포함한 핵신고는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 핵개발의 상징인 만큼 영변 핵단지 폐기는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폐기와 함께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신고 거부에도 최근 잇달아 대북 메시지를 보내며 협상의 끈을 이어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고위급회담 제의에 답변을 미룬 채 미적거리고 있다. 그간 요구해온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북한이 약속한 비핵화의 진정성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무엇보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부터 허용해 진정 ‘완전 검증된 핵 폐기’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신뢰 없이는 보상도, 인내심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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