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데는 시카고에 세운 트럼프타워(2009년 준공·높이 423m)의 명성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이 타워는 두 가지 점에서 탁월하다. 하나는 입지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두 얼굴을 가진 건물의 형태다.
먼저 입지 조건을 살펴보자. 트럼프타워는 동서 방향의 시카고강과 남북 방향의 도로(워배시 애비뉴)가 교차하는 지점에 섰다. 그 덕분에 강에서나 도로에서나 모두 잘 보인다. 타워는 강에서도 도로에서도 앙시(仰視·위로 바라보기)형 조망점이 됐다.
시카고강이 도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서울 청계천이 구도심을 묶어 주듯이, 시카고강도 구도심을 묶어준다. 강변 양쪽으로 마천루가 즐비하다. 강폭이 넓지 않아(90m 내외) 마천루들은 실제 높이보다 더 높아 보인다. 이 점이 시카고강 건축 크루즈 투어를 매력 만점의 ‘마천루 협곡’ 체험으로 만든다.
입지 조건이 시카고 강가의 다른 마천루보다 각별하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이 딱 한 번 남서 방향으로 꺾였다가 원위치로 돌아가는데, 바로 꺾이는 그 사선 지점에 타워를 세웠다.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답게 어떤 땅에 어떤 건물을 세워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강변의 다른 마천루들이 강에 평행이 되도록 서 있는데, 트럼프 타워는 강에 비스듬하게 서 있다. 덕분에 강에서 보면 강 중앙에 선 마천루가 되었고, 도로에서 보면 도로 한복판에 선 마천루가 되었다.
두 얼굴도 매력이다. 강에서는 전면으로 보여 덩치 큰 역도 선수 같고, 도로에서는 측면으로 보여 늘씬하고 우아한 피겨 스케이터 같다. 사실 처음에는 시카고강에서 바라보이는 뷰만을 신경 썼다. 초기 계획안이 여론에 공개되자, 시카고트리뷴지의 건축비평가 블레어 케이민은 입지성은 예찬하면서 도로 쪽 조망 고민이 부족하다고 건축가 에이드리언 스미스에게 일침을 가했다. 스미스는 마천루의 몸통을 3단으로 나누어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그 결과, 트럼프타워는 강에서 보면 위로 갈수록 뒤로 후퇴하는 마천루로 보이고, 도로에서 보면 위로 갈수록 앞으로 전진하는 건물로 보인다.
트럼프타워는 마천루가 도시에서 가질 수 있는 건축적인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마천루는 건축 유형 중에서도 가장 높고 크다. 그동안 우리나라 주류 건축은 마천루 덩치가 주는 스케일감 때문에 도시블록 속에 촘촘히 있는 골목길이 지워지는 안 좋은 면만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 보면, 마천루는 어떤 유형의 건축보다도 멀리서도 보일 수 있고, 높이 때문에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새로이 그려나갈 수가 있다.
조선시대 한양을 대표하는 마천루는 남대문이었다. 남대문은 이 시대 마천루가 도시에서 가져야 하는 역할과 기능에 대한 지혜를 말해주고 있다. 당시 남대문은 주위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화강석으로 높게 우뚝 솟았고, 포작지붕 포물선이 그려 나가는 스카이라인은 경쾌하고 우아했으며, 아치문인 홍예문은 도시의 대문이었다.
남대문의 현판은 또 어떠한가. 정도전이 작명한 것으로 알려진 ‘숭례문’의 숭(崇)자를 유심히 보면, 산(山) 아래 종(宗)이 있다. 산 아래 있는 조선시대를 붙잡고 있었던 유교적 예제, 종법성이다. 이 글자는 건축적으로는 북한산 아래 있는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판만 놓고 본다면, 숭례문은 당시 한양의 또 다른 마천루인 광화문과 짝을 이루고 있었다. 민초들의 ‘숭례’와 왕실의 ‘광화’는 광화문광장(육조거리)을 양 끝에서 붙들고 있는 두 개의 북엔드 마천루였다. 마찬가지로, 동대문과 서대문은 운종가(상업로·오늘날의 종로)를 붙들고 있는 북엔드 마천루였다. 조선시대 한양 마천루는 짝을 이루며 남북축으로는 도심광장을 마천루가 붙들고 있었고, 동서축으로는 상업로를 붙들고 있었다. 트럼프타워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조선시대 마천루인 남대문과는 떨어져 있으나 마천루의 가능성을 도시에서 펼친 점에서는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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