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혜화타워(옛 KT 혜화지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정한 A급 통신국이다. 내란 선동 혐의로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2013년 경기동부연합 조직원 모임에서 공격할 시설 중 하나로 KT혜화타워를 들었다. 당시 녹취록에는 ‘혜화국의 경비가 엄하지 않다’는 정탐보고까지 나와 있다. KT는 이석기 사태 이후 혜화타워의 보안 태세를 강화했다고 했으나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KT 아현지사 화재 다음 날 밤과 그다음 날 낮 2차례 혜화타워의 경비 상태를 직접 점검한 결과 정문 경비를 피해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진입한 후 비상계단을 통해 혜화타워 6층부터 지하 1층까지 모두 제한 없이 접근이 가능했다.
KT혜화타워는 국내 주요 정보통신망이 집중된 통신의 심장이면서 국내 인터넷망이 해외로 연결되는 관문이다. 국방부 훈령인 ‘국가중요시설 지정 및 방호 훈령’에 따라 국제위성지구국, 해저통신중계국, 국가기간전산망, 전화국 등 주요 정보통신시설과 전력 통신 상수도 가스 등을 수용하는 대도시 지하공동구 시설은 국가중요시설로 분류된다. 과기부는 통신국을 A, B, C, D급으로 나눠 A∼C급에 대해서는 직접 점검한다. A급인 혜화타워의 방호가 이렇게 허술할진대 다른 통신국은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화재가 난 아현지사는 D급으로 분류돼 통신사의 자체 점검에 맡겨졌다. 지하통신구에 방재장비는 소화기 1대뿐이었다. D급이라도 중요성은 국가중요시설인 공영방송사 지방총국이나 송신시설 못지않다는 게 화재의 여파로 분명히 드러났다. 통신국이 마비되면 방송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도 이용할 수 없고 전화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어제 국회에 출석해 “주파수는 국가 재산을 통신사가 빌려서 그걸로 사업을 하는 공공재 성격이 강한데, 개별 기업의 경영 활동에 맡겨 왔다”며 기업의 잘못인 것처럼 말했다. 기업의 책임이 크지만 국가가 관리할 중요시설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도 그 못지않다.
2001년 정보통신기반보호법이 만들어졌지만 이 법은 전자적 침해 행위로부터의 보호만을 목적으로 한다. 정부와 통신업계가 해킹 등 온라인에서의 침해를 막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 사이 보안의 기본인 오프라인에서의 방호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아현지사 화재는 천재지변이나 테러 혹은 사보타주(시설 파괴 행위)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급속한 통신기술의 발전을 우리의 인식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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