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을 잡으려면 권력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의지는 역사적 사명감일 수도, 정적(政敵)에 대한 복수심일 수도, 자기 착각이나 과대망상일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2·45대)의 권력 의지에 불을 지른 사람은 역설적이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57·44대)이라는 분석이 미 정가의 다수설이다.
2011년 4월 30일 워싱턴 힐턴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오바마는 부동산 재벌 트럼프를 마음껏 조롱했다. 2012년 대선에 나설 공화당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던 트럼프는 오바마의 출생지 의혹을 집요하게 제기해왔다. 오바마는 행사에 초대된 트럼프를 개그 소재로 삼아 총공세를 퍼부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백악관에 확실한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오바마가 보여준 ‘트럼프 백악관’ 합성 사진엔 호텔 카지노 간판이 걸려 있고, 정원 수영장엔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젊은 여성들이 놀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뜨리고 배꼽을 잡았지만, 트럼프는 쓴웃음을 지은 채 정면만 응시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소수인종(흑인) 대통령에게 당한 수모가 주류 백인 트럼프의 분노와 권력 의지를 촉발했고 2016년 대선 캠페인에까지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한다. 트럼프가 백악관 출입기자 연례 만찬을 ‘가짜뉴스들의 파티’라고 비난하며 참석하지 않는 것도 ‘2011년 트라우마’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의 ‘분열의 언어와 독설의 정치’는 반(反)트럼프 권력 의지를 키워내고 있다. 10여 년 무소속 생활을 접고 최근 다시 민주당원이 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76)도 그 대표적 인물. 주류 언론들은 “블룸버그의 2020년 대선 도전을 향한 행보가 시작됐다”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블룸버그는 시장 3선(2002년 1월1일∼2013년 12월 31일 재임)을 하면서 “2001년 9·11테러의 공포와 충격에 빠졌던 뉴욕을 ‘세계 최고의 도시’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뉴욕 시장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공직”이라고 수없이 다짐했다. 평소 “어떤 선거에서든 당적(黨籍)이 아닌, 애국심으로 투표한다”고 말해왔다. 그런 블룸버그가 지난 대선 기간 “미국이 경제를 아는 ‘최고경영자(CEO)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민심을 이해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절대 아니다”라고 외쳤다. “문제를 일으키는 대통령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렇지만 블룸버그가 언론의 전망대로 2020년 대선에 ‘문제 해결자(a problem-solver)’로 직접 나서려 한다면, 기자는 “제발 참으시라”고 말리고 싶다. ‘트럼프가 자격 없는 대통령’이란 판단과 ‘다음 대통령은 나여야 한다’는 인식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직은 죽음과 같다’는 경구가 있다. ‘공직이든 죽음이든 얻으려 따라다니는 것도 어리석고, 찾아왔을 때 달아나는 것도 어리석다’는 의미다. 그러나 권력 의지에 눈이 먼 정치인들은 ‘무조건 따라다니고 무조건 끌어안으며’ 스스로 현명하다고 착각한다.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은 비극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뒤다.
최고의 뉴욕시장이 최고의 대통령이 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괜찮은 업적과 성과를 남긴 시장이었으나 불행한 결말을 겪고 있는 전직 대통령’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드리는 말씀이다.
이런저런 집안의 시련과 정치적 논란을 겪을 때마다 ‘나에게 더 큰 파워가 있었다면’이라며 권력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한국의 시장이나 도지사에게도 같은 조언 드리고 싶다. 제발 참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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