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표 시인이자 문학의 거목인 미당 서정주는 한민족의 문화와 정서를 독특한 언어를 통해 풀어냈다. 그는 탁월한 언어 감각, 15권의 시집이라는 다작, 고르게 뛰어난 작품의 완성도, 전통 소재의 활용 등으로 현대시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국화 옆에서’ ‘자화상’ ‘귀촉도’ ‘동천’ 등의 작품은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그에게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이 늘 따라다닌다. 일제를 찬양하는 10여 편의 시와 소설, 비평문을 썼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 방송에 출연하여 그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등의 이유이다. 그의 삶은 시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 글씨 분석 결과는 그가 뛰어난 시인이 된 이유도 보여주지만 반대로 훌륭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이유도 말해준다.
그의 글씨의 특징은 ‘ㄹ’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감성적이고 직관적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고 때로는 충동적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서정주가 80세에 자신의 시 ‘학(鶴)’을 친필로 썼는데 거기에는 ‘ㄹ’이 9번 나온다. 그런데 대부분이 중간에 선이 끊겨서 논리적이지 않고 직관적임을 말해준다.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성향이다. 또 ‘ㄹ’을 구성하는 3개의 가로선의 간격이 서로 차이가 있어서 논리보다는 감정과 감성이 우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자의 크기나 간격 등도 불규칙해서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서정주 글씨의 다른 특징들도 그의 반민족, 반민주적 행적과 관련이 있다. 우선 글자의 간격이 넓다. 이런 글씨를 쓰는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새롭거나 다른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글자, 특히 시작하는 글자가 크다. 이것은 통이 크고 대범하며 과시욕이 있고 외향적이고 표현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특징들은 친일파나 변절자들의 글씨에서 자주 보인다. 서정주의 감성, 직관, 표현력, 최고가 되려는 열망은 그를 문학계의 거목으로 만들었지만 논리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직관적이며 의지가 부족해서 격동의 시대에서 자신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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