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아산 입사 15년 차인 A 차장(40)도 지난달 18일 방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입사 이래 수십 번 북한을 방문했지만, 이번 금강산 관광 20주년 기념행사에선 왠지 가슴이 더 설렜다고 한다. ‘진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
A 차장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2004년 5월 현대아산에 입사했다. 입사 1년 전에 금강산 관광이 육로로까지 확대되면서 대북 사업이 순풍을 타고 있던 때였다. 2005년 6월 금강산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고, 그해부터 현대아산은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그가 받던 월급은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 쟁쟁한 계열사보다 더 많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에 설립된 현대아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월급을 많이 주라”고 지시한 덕분이었다.
현대아산은 매번 새로운 역사를 써 갔다. 북한과 맺은 계약, 북한에서 벌인 사업이 모두 ‘사상 최초’였다.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됐다. A 차장은 ‘남북 관계 개선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선후배 관계도 끈끈했다. A 차장은 서울 계동 사옥 근처에서 술값 걱정 없이 술을 마셨다. 선배들이 술값을 다 내줬으니까.
하지만 2008년 7월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망 사고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 천안함 폭침(2010년), 연평도 포격(2010년), 북한 핵실험(2009, 2013, 2016, 2017년) 등 악재가 연이어 터졌고, 북한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인한 매출 손실액을 약 1조5000억 원으로 보고 있다. 10년간 누적 적자는 2247억 원.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평화생태 관광 프로그램, 해외를 오가는 크루즈 여행, 심지어 탄산수 유통에까지 손을 댔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2008년 1084명이었던 직원을 현재 167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매출 손실액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앞으로 전망도 불확실하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하는 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쉽지 않다. 설혹 재개되더라도 정치 논리에 휘말리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만난 A 차장의 표정은 밝았다. “경영 악화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고,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과 동기를 봐야 했다. 월급도 한동안 줄었다. 하지만 현대가 아니면 어느 기업이 대북 사업을 할 수 있겠나.”
정 명예회장의 고향은 금강산 북쪽 강원 통천이었다. 정주영, 몽헌 부자는 고향을 일군다는 애절한 소망을 담아 필생의 사업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펼쳐 왔다. 현재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현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서 “선대 회장님의 유지(遺志)인 남북 경제협력은 반드시 현대그룹에 의해 꽃피게 될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대북 퍼주기 논란 등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해 세간의 비판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경협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대 특유의 ‘불도저’ 정신, ‘오뚝이’ 정신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대북사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그래도 없다면 새 길을 닦아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10년간 남북 관계의 풍랑에 따라 부침해 온 현대가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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