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35〉아버지 부시의 죽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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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는다. 그중에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이별도 있고,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이별도 있다. 그 많은 이별 중에서 재회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완전한 이별이 사별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완전한 이별에는 특별한 조의를 표해왔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커다란 옹기를 관으로 사용해서 묻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고인을 가까이 두고 싶었는지 옹관을 집 근처에 묻었다. 그러다가 이런 매장법이 산사람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다. 점차 시신을 마을 밖에 묻기 시작했고 그래도 편안치가 않자 멀리 산 위 같은 곳에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마을과 사회가 커져 가면서 마을 입구나 사원에 공동묘지가 마련되었다. 우리는 유교문화의 영향인지 마을묘지나 사원묘지가 덜 발달했지만 유럽이나 일본에는 이런 공동묘지가 많이 발달했다.

유럽의 중세 어느 성곽 도시에 답사를 갔다가 유적지 옆에 마련된 작은 마을 공동묘지를 보았다. 그 작은 묘지에도 전몰장병을 위한 구역이 따로 설정되어 그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위 장성이 아니면 군 경력을 비문에 잘 적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전사자가 아니더라도 20세기의 세계대전, 혹은 그 이전 세기 전쟁의 종군자들은 군 경력을 묘지명에 자랑스럽게 적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전몰장병을 위한 국립묘지가 마련되어 있다. 미국도 알링턴 국립묘지를 만들고 거의 성역으로 취급한다. 국립묘지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간혹 국립묘지 방식이 군과 민을 분리시키는 부작용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유럽의 마을묘지를 방문했을 때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더 이전 사람들의 목숨을 건 노력으로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데는 마을묘지가 훨씬 울림이 컸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추모 기사를 보면 사람들은 그가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태평양전쟁 참전 용사였다는 사실을 함께 기억한다. 그런 것이 부럽다.
 
임용한 역사학자
#아버지 부시#조지 부시#세계대전#태평양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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