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걸크러시]〈12〉기생이 정조를 지킨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3시 00분


“무운은 성 진사를 떠나보낸 뒤 어느 누구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그래서 양쪽 허벅지에 쑥으로 뜸을 떠 창독(瘡毒)의 흔적처럼 만들고 고약한 병을 얻었다는 핑계를 댔다. 이후로 강계 지방에 내려온 사또들은 무운과 잠자리를 하지 못하였다.” ―야담집 ‘계서잡록(溪西雜錄)’에서

강계 지방의 기생 무운(巫雲)은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주로 유명하였다. 이 때문에 고을에 내려오는 관리마다 수청 들기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서울에서 내려온 성 진사와 깊은 정을 맺게 되면서부터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기로 맹세하게 된다.

고을 사또들의 수청 요구를 모면하기 위한 무운의 계책은 자기 몸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무운은 육체적 고통이나 몸에 생기는 끔찍한 흉터 따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만큼 성 진사에 대한 사랑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 진사는 무운의 마음과 같지 않았다. 이후 영영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운은 고을 사또로 내려온 이경무에게 쉽게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4, 5개월 동안 잔심부름을 하면서 이경무를 관찰해 보니, 당당한 대장부이자 인품 또한 훌륭한 사람이었다. 남은 인생 동안 수절하면서 절의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성 진사 대신 이경무를 선택하여 정절을 지켜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또 불행이 찾아온다. 무운은 임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이경무에게 따라가기를 청하지만 거절당했다. ‘그렇다면 수절하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밝히지만 이경무는 ‘내가 아닌 성 진사를 위한 수절이 아니냐?’라며 무운의 진심을 왜곡하고 조롱한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무운은 즉시 은장도를 꺼내 왼쪽 약지를 찍어 내린다. 기생도 수절할 의지가 있는 사람임을 강렬하게 표현한 것이다.

무운은 세월이 흘러 이경무를 다시 만나 1년 가까이 함께 지내지만 절대 동침하지 않는다. 비록 이경무가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고 수절 의지를 무시하였을지라도 무운 스스로 한 다짐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경무가 죽었을 때 그의 아내와 장례를 치르고 상복까지 입으며 헌신적인 사랑을 보인다. 무운은 이경무의 아내나 첩이 아닌, 일개 기생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경무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것이다.

무운은 남은 인생을 수절하다가 죽는다. 보통 ‘기생’이라 하면 몸을 쉽게 허락하는 여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무운은 신분적 제약 안에서 소신과 정조를 지키고자 하였다.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시킨 것이 아니라 주체적 자아가 선택한 남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 역시 상관없었다.

무운은 평소 자신을 ‘운대사(雲大師)’라 불러 주기를 원하였다. 대사(大師)는 꼭 승려가 아니더라도 사람을 높일 때 쓰기도 한다. 무운은 신분제도가 명확한 속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여승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후남 전주대 강사·국문학 박사
#계서잡록#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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