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80〉크기가 큰 발자국, 소리가 큰 발걸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5일 03시 00분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어떤 책 제목의 일부다.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는가.

● 발자국 소리가 큰 아이들

발자욱으로 고치고 싶을 수도 있다. 시적 허용으로는 ‘발자욱’이 많이 사용되지만 표준어는 아니다. 제대로 수정하려면 생각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가장 쉬운 일부터 하자. ‘발로 밟은 자리에 남은 모양’이라는 기본 의미를 짚으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방향이 보인다. 발자국은 바닥에 남은 모양이니 소리가 없다. 발자국이 소리를 낸다면 오히려 놀랄 일이다. 발이 땅에 닿을 때 나는 소리를 말하고 싶었다면 아래처럼 수정할 수 있다.

● 발자국 소리가 크다.(×)
→ 발소리가 크다.(○) → 발걸음 소리가 크다.(○)


발걸음도 ‘모양’이니까 ‘발자국 소리’처럼 틀린 말이라 생각할 수 있다. 좋은 지적이다. 예들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보고 있으니까. ‘발걸음’은 모양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걷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걷다’라는 동사의 ‘명사’가 ‘걸음’이다. 그러니 ‘걷는 행동이 내는 소리’라는 의미로 ‘발걸음 소리’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어쨌든 ‘발자국 소리’는 잘못된 표현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우리는 낱낱의 단어들만을 외우지 않는다. 때로는 단어들이 모인 어구를 묶어 한 단위를 기억하기도 한다. 즉, ‘발자국’과 ‘소리’를 각각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발자국 소리’라는 어구를 기억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구 속의 단어 관계를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기억했다가 그대로 꺼내 사용했기에 이런 잘못된 표현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발자국 소리’라고 말한다. 잘못된 관형구가 상용되면서 생긴 일이다. 비슷한 예를 몇 개 보자.

● 피곤해서 눈동자가 충혈되었다.

문장 내용이 그대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의 눈은 눈동자와 그것을 둘러싼 하얀 부분으로 나뉜다. 피곤하여 빨개지는 부분은 눈의 하얀 부분이다. 그렇지 않고 눈동자가 충혈됐다면 아주 큰 병일 수도 있다. 눈동자는 눈 속의 동그란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니까. 검은 눈의 사람을 예로 들자면 눈의 하얀 부분은 ‘흰자위’나 ‘흰자’로 부르고 검은 부분은 ‘검은자위’나 ‘검은자’이다. 여기서 ‘자위’는 계란의 ‘흰자위, 노른자위’ 할 때의 그 ‘자위’다. 이를 반영해 문장을 고쳐보자.

● 눈동자가 충혈되었다.(×)
→ 눈이 충혈되었다.(○) → 흰자위가 충혈되었다.(○)


요새는 사람의 눈을 가리켜 ‘흰자위/검은자위’로 구분하는 일이 흔치는 않다. 이것이 어색하다면 간단히 ‘눈이 충혈되었다’로 고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어색하다고 고유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어휘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다른 문장 하나를 더 보자.

● 이 일에 손목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제 ‘손목을 걷었다’는 표현이 왜 이상한지가 보일 것이다. 손목을 걷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엽기적 만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면 아래처럼 수정해야 한다.

● 손목을 걷었다.(×)
→ 소매를 걷었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발자욱#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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