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한국 프로야구는 다사다난했다. 넥센 히어로즈 주전 투수와 포수가 선수단 원정 숙소인 인천의 한 호텔에서 술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승부조작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선수를 영구 실격시켰고 승부조작 제안을 받은 사실을 자진 신고한 선수는 포상금 5000만 원을 불우이웃과 모교 후배들을 위해 전액 기부했다.
과거의 음주운전 사고가 들통 난 선수는 2019 정규 시즌 3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이 사실을 KBO에 알리지 않은 당시 소속 구단에는 벌금 1000만 원이 부과됐다.
한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야구대표팀에는 병역 버티기 의혹으로 미운털이 박힌 선수가 선발돼 야구팬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이에 사상 최초로 ‘금메달 박탈 국민청원’까지 등장했고 선동열 감독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 나와 올 아시아경기 선수 선발 과정에서의 비리 여부를 추궁받았다. 결국 선 감독은 국가대표팀 전임(專任) 감독직에서 중도하차했다.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한국시리즈까지 끝났건만 ‘잡음’은 계속 들렸다. 금지약물 복용 전력이 있는 김재환(두산)이 2018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것과 관련해 MVP 수상 자격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가장(Most) 가치 있는(Valuable) 선수(Player)로 뽑히기에 전과자(금지약물 사용자)는 원천적으로 자격 미달이라는 ‘수상 자격 영구 박탈론’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선수 자격과 출전권을 회복시켜 주듯이 ‘사면·복권론’이 맞서고 있다. 까다롭게 따지는 헤비 팬(heavy fan)과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 팬(light fan)이 동시에 존재하기에 이 사안은 정답이 없는 난제다.
MVP와 골든글러브(포지션별 최우수선수) 투표권을 가진 야구 담당 기자와 중계방송사 PD, 아나운서, 해설위원 등 미디어 관계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도핑(경기력 향상을 위한 금지 약물 사용) 전력을 심각한 결격 사유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수상 후보의 성적 위주로 단순하게 표를 던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김재환이 MVP 투표에서 획득한 표를 분석해 봐도 알 수 있다. 현행 MVP 투표 방식은 순위별 점수제다. 투표자가 1위부터 5위까지 자유롭게 순위를 정하는데 1위 8점, 2위 4점, 3위 3점, 4위 2점, 5위 1점이 부여돼 총점이 가장 높은 선수가 MVP로 뽑힌다.
올해에는 총 111명의 투표인단 중 76명이 김재환에게 표를 던져, 총점 487점(1위 51명, 2위 12명, 3위 8명, 4위 2명, 5위 3명)으로 팀 동료 조쉬 린드블럼(367점·두산)을 제쳤다.
올 시즌 홈런왕(44개)과 타점왕(133타점)인 김재환은 KBO리그 최초로 3년 연속 ‘타율 3할(0.334), 30홈런(44개), 100타점(133타점), 100득점(104득점) 돌파’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기록만 보면 손색없는 MVP 후보다. 그런데도 투표인단 중 무려 35명은 김재환에게 5위 표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약물 전력’을 감안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KBO리그 역대 MVP 명단에는 ‘보이지 않는 오점’이 있다. 2007년 MVP를 차지한 외국인 투수 다니엘 리오스(당시 두산)다. 이듬해인 2008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리오스는 도핑 검사에 걸려 곧바로 쫓겨났다. 2007년 KBO리그에서 리오스가 거둔 시즌 22승은 ‘약발’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이제 KBO리그 역대 MVP 명단에는 ‘보이는 오점’(사상 첫 약물 전력 MVP)도 남게 됐다. “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을 더 무겁게 가지고 가겠다. 앞으로 남은 인생 더 성실하게,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공개 석상에선 처음으로 자신의 ‘약물 오점’을 우회적인 표현으로 밝힌 김재환의 MVP 수상 소감은 참회에 가깝다.
일단 온라인 세상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평생 그 흔적이 남는다. 훗날 ‘잊혀질 권리’가 법률로 제정되더라도 팩트 자체는 지우기 쉽지 않을 듯하다. 김재환은 한국프로야구 선수협회와 은퇴선수협회가 주는 올해의 타자상과 2018년 최우수선수상을 각각 받았다. 10일 골든글러브 수상도 유력하다. 연말 상복은 터졌건만 수상 소감 준비는 고역일 듯싶다. ‘악마의 유혹’ 도핑에 대한 철저한 경각심을 동료 선후배들에게 끊임없이 되새겨 주는 일이야말로 그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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