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뒤면 국내 300인 이상 사업주 3358명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제 위반에 대한 처벌 유예기간(계도기간)이 끝나면서 새해부터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직원이 “난 주 52시간을 넘겨 일했다”고 당국에 신고하면 법대로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미 주 52시간에 맞춰 차근차근 준비해 왔기 때문에 계도기간이 끝난다 해도 큰 혼란이 일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업무 특성상 주 52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일부 업종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 3358곳에서 일하는 직원 250만 명 가운데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근로자 수는 10월 말 현재 19만 명으로 전체의 7.6%에 이른다. 근로시간 단축 직전인 6월에도 19만 명이었다. 제도 시행 전과 후에 큰 차이가 없다. 업무 특성상 획일적으로 주 52시간제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설, 게임, 조선 등 집중 근로를 해야 하는 업종이나 연구개발(R&D) 분야, 납품 기한을 맞춰야 하는 제조업, 일이 몰리는 서비스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건설업계는 걱정이 태산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해외 수주시장에서 한국 건설사의 첫 번째 경쟁력이 ‘빠르고 신속하다’는 점인데, 공사기간을 늘려 잡게 되면 수주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올해는 현장에서 최대한 주말에 쉬고, 급한 곳은 3개월 탄력근로제를 적용해 그럭저럭 버텼는데 주 52시간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새해부터는 큰일”이라며 걱정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정은 느긋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출범식 때 “국회에 (경사노위가 논의할)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한마디한 뒤부터 국회의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는 스톱됐다. 야당은 탄력근로제 법안 심사를 시작하자고 했지만 여당이 “경사노위를 지켜보자”며 이를 거부했다. 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동에서 연내 탄력근로제 법안 처리에 합의해 놓고도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경사노위는 이번 주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를 출범시켜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지만 이미 연내 도입은 물 건너갔다. 문성현 위원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를 내년 1월까지 끝내고 국회에 최종안을 내겠다”고 했다. 그나마 당초 내년 2월을 목표로 했다가 한 달 앞당긴 것이다.
현재로선 경사노위 안이 1월에 나오면 2월 임시국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확대 도입까지 약 두 달의 ‘시간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처벌 유예기간은 이달 말 끝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는 2월에 마련되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애가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데 대책을 마련해야 할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그리 바쁘지 않은 모양이다. 고용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들이 그동안 주 52시간제를 어떻게 운용해 왔는지 실태 파악을 끝낸 뒤 계도기간 연장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제도 시행 후 6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실태 파악 중’이란다.
3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주 52시간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근로자가 19만 명이다. 이들이 일하는 업체의 사업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탄력근로제 확대 도입 시까지는 주 52시간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 유예기간을 늘려 주는 게 맞다고 본다. 대승적 차원에서 6개월의 계도기간을 도입했던 당정청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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